[밀물썰물] 나의 피시앤드칩스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영국 하면 생각나는 음식이 그나마 ‘피시앤드칩스(Fish & Chips)’다. 대구와 감자 튀김으로 구성된 영국인의 소울푸드(soul food) 피시앤드칩스에는 난민의 역사가 있다. 1492년 스페인 국왕 칙령에 의해 포르투갈로 추방된 10만 명의 유대인이 다시 네덜란드와 영국으로 집단 이주하면서 그들이 즐겨 먹던 ‘바칼라우(대구) 튀김’이 피시앤드칩스로 정착했기 때문이다. 박해와 가난, 내전을 피한 난민의 행렬에 끼여 대구 튀김도 도버해협을 건너게 된 셈이다.

피시앤드칩스 가게는 1860년께 산업혁명 이후 방직 공장이 몰려 도시 빈민 노동자가 많던 영국 런던과 맨체스터에서 신문지에 둘둘 말아 판 것이 시초였다. 파김치가 되도록 일에 시달리던 노동자에 한끼 힘을 주던 서민 음식이었다. 이후 영국 전역으로 번져 나가며 대중의 입맛을 사로잡았다고 한다. 오죽했으면 1950년대 피시앤드칩스에 들어가는 대구를 더 잡기 위해 영국 어선이 아이슬란드 해역까지 난입해 싹쓸이 조업을 벌이다가 국교 단절이란 진통까지 겪기도 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식량이 부족한 영국 국민의 굶주림을 극복하게 한 덕분에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가 ‘훌륭한 동반자(Good Companions)’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어려운 시기를 함께하고, 이겨낼 힘을 준 전우라는 뜻이었다. 전세를 뒤집은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 비공식 암호로 활용될 정도였다.

영국인의 소울푸드 피시앤드칩스가 때아닌 장수 음식으로 거론되고 있다고 한다. 기네스세계기록(GWR)에 111세로 살아 있는 최고령 남성으로 이름을 올린 영국인 존 티니스우드 덕분이다. 2차 세계대전 참전 용사로 타이타닉호가 침몰한 1912년 영국 리버풀에서 태어난 그는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특별한 식단은 없다”면서도 “피시앤드칩스를 가장 좋아해 금요일마다 먹는다. 다음에 언제 먹으러 갈까 기다리면서 젊음이 유지된 것 같다”라고 밝혔다고 한다.

소울푸드는 인간의 슬픔과 기쁨, 영혼을 어루만져 주는 효과가 있다. 그 음식맛과 함께 향유했던 가족, 친구, 연인과의 아름다운 대화와 식탁의 웃음소리 기억이 인간을 건강하고 젊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한국에서도 정구지찌짐, 김치고등어조림, 곰국, 갈비찜, 대구탕, 김칫국, 만두 등 어머니의 손맛만 생각해도 마음이 촉촉해지는 음식이 한둘이 아니다. 나의 피시앤드칩스는 무엇일까. 각박한 세상이지만, 각자 자신을 보듬어 주는 음식 하나쯤은 가지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