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우키시마호 비극’ 기억·재조명·교육 서둘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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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교과서에 등재” 목소리 힘 얻어
정부·학계 머리 맞대고 진상 규명해야

한 출판사의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에 실린 일제강점기 국외 이주민 관련 내용. 국내 9개 출판사의 한국사 교과서 어디에도 한국인 수천명이 귀향길에 일본 앞바다에 수장된 우키시마호 사건을 싣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정종회 기자 jjh@ 한 출판사의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에 실린 일제강점기 국외 이주민 관련 내용. 국내 9개 출판사의 한국사 교과서 어디에도 한국인 수천명이 귀향길에 일본 앞바다에 수장된 우키시마호 사건을 싣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정종회 기자 jjh@

한 시민단체가 우키시마호 사건의 교과서 반영을 촉구하는 공문을 조만간 교육부에 보낼 계획이라고 한다. 일선 초·중·고에서 가르치는 한국사 교과서 어디에도 우키시마호 사건이 명시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우키시마호 사건은 해방 직후인 1945년 8월 24일 수많은 한국인 징용노동자들을 태우고 부산으로 향하던 일본 해군 수송선 우키시마호가 도중에 침몰한 사건이다. 최근 밝혀진 바에 따르면 못해도 8000명 이상의 한국인이 희생된 대참사인데, 여태껏 국내 교과서에 언급되지 않은 사실을 납득하기 힘들다. 지금이라도 정부와 관련 학계가 머리를 맞대고 정밀한 논의에 들어갈 필요가 있어 보인다.

우키시마호 사건의 교과서 등재 요구는 우리 사회에서 이 사건이 영영 잊히지 않을까 하는 절박함에서 나오는 것이다. 근래 밝혀진 여러 정황상 우키시마호 침몰은 기뢰로 인한 우발적인 사고가 아니라 일본에 의한 고의적인 폭침이었던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우리 현대사가 갖고 있는 시대적 아픔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사건인데, 그럼에도 이를 기억하는 국민을 찾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실제로 2018년 전국적으로 진행된 설문조사에서 우키시마호 사건을 안다는 응답은 전체의 6%에 불과했다. 지금이라고 사정이 다르지는 않을 터이다. 이대로라면 우키시마호 사건은 역사 속으로 영영 사라질지도 모른다.

그동안 우키시마호 사건에 대한 우리 정부와 학계의 관심은 의아하다 싶을 정도로 박했던 게 사실이다. 진상 규명을 위한 정부 차원의 조사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2007~2008년 소송자료집이나 생존자 구술자료 발간에 그쳤고, 그나마 2015년 이후엔 전면 중단됐다. 현 정부 들어서는 유족들의 유해 봉환 요구에 따라 지난 8월 일본 정부에 유해 명단을 요청한 게 전부다. 국가가 당연한 책무를 스스로 저버렸다는 비판이 나옴 직하다. 대학 등 학계도 우키시마호 사건을 외면해 왔다. 시민단체가 주최한 세미나 등이 산발적으로 개최됐을 뿐, 전문 연구자들의 체계적인 연구조사 활동이나 관련 논문은 찾기 힘들 정도다.

여야 국회의원 28명이 지난 8월 ‘우키시마호 사건 진상규명 촉구 결의안’을 발의했다. 우키시마호 사건을 기억하고 추모할 공간을 부산항 1부두에 조성하자는 목소리도 최근 민간단체를 중심으로 확산하고 있다. 이처럼 우키시마호 사건을 기억하고 재조명하려는 노력이 곳곳에서 시도되고 있는 점은 고무적이라 하겠다. 하지만 거기에 만족할 일이 아니다. 차제에 정부와 학계가 최대한 힘을 합쳐 우리 아픈 역사를 돌아보고 이를 자라는 뒷 세대가 교훈으로 삼도록 교육시켜야 한다. 시민단체가 요구하는 교과서 등재를 위한 전문가 합의를 도출하려는 노력도 있어야 한다. 모름지기 역사를 잊으면 미래는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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