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20여년 만의 거대 합병 성공할까

배동진 기자 djbae@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배동진 서울경제팀장

아시아나 합병 장기화에 회의론 대두
기업결합신고 국가 중 3곳 승인 남겨
대한항공 "경쟁력 강화 차원 합병 불가피"
현대차·기아차 합병 '성공적'… 부작용도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합병이 3년 이상 장기화되면서 합병 자체에 대한 회의론이 대두되고 있다. 대한항공은 2020년 11월부터 아시아나항공 합병을 추진하며 한국을 포함한 14개국에 기업결합 신고를 했다. 현재 유럽연합(EU)을 비롯해 미국, 일본 등 3개국 승인만 남은 상태이지만 상황이 여의치만은 않다. 이들 국가의 반발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대한항공은 이번 합병에 사활을 걸고 있다. 조원태 회장은 지난 6월 튀르키예에서 열린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연례 총회 때 인터뷰를 갖고 “무엇을 포기하든 성사시킬 것”이라며 의지를 보였다.

같은 달 6월 EU 집행위의 기업결합 심사 승인 여부 결정 연기에 대한항공은 10월 말까지 EU 집행위에 EU 경쟁 제한성 완화를 위한 시정조치안을 제출하기로 했다. 조 회장의 의지가 반영된 검토안은 다분히 충격적이다. 아시아나항공 화물사업부 전체를 매각하는 방안과 함께 대한항공 14개 유럽 노선 중 일부를 반납하는 방안 등이다. “차·포 떼고 합병은 왜 하겠다는 거냐”는 지적도 나온다. 아시아나항공 조종사노조도 최근 합병 반대 성명을 내면서 “차라리 제3자 매각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 항공산업은 1988년 아시아나항공 설립 이래 양강 구도를 이끌며 성장했다. 하지만 업계 1위 대한항공이 2위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할 경우 시장 독점 논란이 불가피하다. 한국 정부는 승인했지만 EU와 미국은 승객과 화물 운임 상승이 우려된다며 반대하는 분위기다. 실제 합병이 성사될 경우 해외 쪽보다는 내국인들의 피해가 클 것으로 보이지만 상황은 그 반대다.

부산시민들도 이번 합병이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아시아나와 부산 기업인들의 지분 참여로 이뤄진 에어부산이 합병사로 넘어가게 되고 지역 기업인들과 시민들은 향후 인상된 가격으로 이용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에 부산지역에선 에어부산 분리 매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부산상공회의소 등을 중심으로 부산 기업들은 KDB산업은행 강석훈 회장에게 에어부산 인수 의지를 피력한 것으로 전해진다. 부산 기업들이 컨소시엄을 꾸려 에어부산을 인수한다는 구상이다.

이번 합병은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 현대차·기아차 합병과 비슷한 부분이 많다. 당시 현대차와 기아차를 합칠 경우 시장 점유율이 높아 독과점이 우려됐다. 이런 상황임에도 공정위는 양 사 합병을 승인했다. 당시 공정거래위원회는 독과점에 대한 우려보다 산업경쟁력 강화에 더 큰 비중을 뒀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 자동차산업은 현대차그룹이 글로벌 3위로까지 도약하면서 탄탄한 성장을 이루고 있다. “결과적으로 24년 전 합병은 성공적이었다”고 평가받는 이유다.

하지만 현대차와 기아가 국내 자동차 시장에서 80%에 가까운 점유율을 보이면서 찻값 상승으로 인한 소비자 부담도 적지 않다. 특히 1t 트럭 시장의 경우 현대차의 ‘포터’와 기아 ‘봉고’가 독점하면서 소비자 사이에선 ‘찻값만 오르고 성능과 편의성은 크게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불만이 적지 않다. 공정위가 당시 합병 시 조건으로 ‘화물차 가격인상을 억제하라’는 조건을 붙였는데 제대로 통제가 되지 않은 것이다.

2016년 브라질 리우올림픽을 2개월여 앞두고 대한항공은 언론사 취재 기자들의 편의를 위해 전세기를 띄우기로 했다. 당시 대한항공이 제시한 항공료는 약 600만 원. 2개월 전에 미국을 경유하는 노선의 티켓이 380만 원이었는데 올림픽 개막이 임박한 상황에서 항공료를 대폭 올려 공지한 것이다. 이후 언론사들의 항의가 잇따르자 50만 원가량 내렸지만 “공식 후원사 지위를 이용해 돈벌이한다”는 비난은 계속됐다.

제주에어가 탄생한 배경도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두 항공사의 노선 독점과 무관치 않다. 과도한 요금으로 제주도민들의 불만이 계속되면서 결국 “우리가 항공사를 만들자”해서 제주에어가 생겨났고 요금 인하에 한몫했다.

시장 독점은 그 피해가 고스란히 소비자의 몫으로 돌아간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 회항사건, 조현민 당시 대한항공 전무의 물컵 갑질 사건, 조 회장의 어머니인 이명희 정석기업 고문의 직원 폭행 등 오너 일가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도 높다. 아시아나항공의 인수자로 대한항공이 아닌 ‘제3의 기업’으로 인수하는 방안이 다시 고려돼야 한다.


배동진 기자 djbae@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