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버스보다 관광버스가 더 많은 ‘쇼윈도 마을’[산복도로 '볕 들 날']

양보원 기자 bogiza@busan.com , 김준현 기자 joo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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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복도로 '볕 들 날'] 2. 세탁소에서 본 감천문화마을

문화재생으로 뜨자 투기꾼 몰려
집 팔고 나가 남은 초등학생 4명
사적 공간 없이 구경거리로 전락
기념품 가게 북적·세탁소 한산
마을 입구엔 대형관광버스 즐비
자주 안 오는 마을버스 늘 만원

지난 6일 부산 사하구 감천문화마을 자신의 세탁소에서 관광객을 바라보는 임순자 할머니의 뒷모습. 활기찬 길거리·관광객과 달리 세탁소는 조용한 하루였다. 김준현 기자 joon@ 지난 6일 부산 사하구 감천문화마을 자신의 세탁소에서 관광객을 바라보는 임순자 할머니의 뒷모습. 활기찬 길거리·관광객과 달리 세탁소는 조용한 하루였다. 김준현 기자 joon@

‘지붕에 올라가지 마세요’ ‘흡연하지 마세요’ ‘문 열지 마세요’ ‘촬영하지 마세요’.

부산 사하구 감천동 감천문화마을 집들은 경고문으로 빼곡하다. 관광객이 올라가 내려앉은 천장,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담배 연기, 갑작스럽게 열리는 마당 대문과 여기저기서 들리는 카메라 셔터 소리. 사적 공간이 구경거리가 된 이들의 고통이 상상되는 경고문이다. 관광객이 몰려들수록 중심에서 밀려난 주민들은 결국 마을을 떠나고 있다. 42년 째 동네 세탁소를 운영하는 임순자(72) 할머니는 누구보다 쪼그라드는 마을을 안타까운 눈길로 목도하고 있다.

■문화재생 바람, 주민을 밀어내다

지난 6일 감천문화마을 엽서가게는 기념품을 사려는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었다. 반면 인접한 10평 남짓한 세탁소는 휑했고, 임순자 할머니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할머니는 귀한 손님이 왔다며 〈부산일보〉 취재진에게 에너지 음료를 건네준다. 손님이 줄다 보니, 세탁소를 오는 모든 이가 반갑고 고맙다고 한다.

할머니는 “20년 전까지만 해도 동네 사람들이 맡긴 세탁물로 건물 3층이 옷들로 가득했다”며 “이제는 사람이 없어서 1층 한구석만 사용해도 옷들을 보관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 달 이내 세탁물을 찾아가는 규칙도 없앤 지 오래다. 덕분인지 좁은 집에 사는 동네 주민들은 세탁소를 계절 옷을 맡기는 옷장처럼 사용하기도 한다.

마을의 소멸은 역설적으로 동네가 유명해지면서 시작됐다. 문화재생 사업 소문은 집값 상승을 부추겼고, 투기꾼들을 불러 모았다. 한밤 자고 나면 한 집이 이사하는 때였다. 할머니도 한 남성으로부터 5차례나 판매 권유를 받았다. 5년 동안 놀고먹을 수 있는 돈을 준다고 했다고 한다. 이런 식으로 대다수 주민이 떠났고, 지금 동네엔 초등학생은 4명 뿐이다. 문화재생의 바람이 주민의 등을 떠미는 결과로 이어진 것이다.



■속옷 촬영, 대문 열기…관광지 마을 일상

이날 오후 2시 할머니는 길 건너편 동네 수선집에 놀러 갔다. 수선집 앞에는 성인 남성 4명이 앉을 수 있는 나무 벤치가 있어 곧잘 주민들이 모인다. 이곳에서 다른 동네 주민과 이야기꽃을 피우는 게 할머니 낙이다.

이야기꽃을 피우던 동네 주민들은 ‘관광객’이란 단어에 잠시 침묵하더니 마음 한구석 묵혀 놓은 불편을 토로했다. 조순자 할머니(80)는 “골목 안까지 관광객들이 들어오는 일이 잦다”며 “집 앞에 널어놓은 속옷을 촬영하거나 대문을 벌컥 열곤 한다. 집 안을 들여다보는 탓에 한여름에도 문을 닫는 경우도 흔하다”고 말했다.

대부분 말도 안 통하는 외국인 관광객이다 보니 동네 주민들은 체념하는 법을 먼저 배웠다. “이제 와 늙은이들이 불평해서 뭐가 달라지냐”며 “이제는 그냥 지내는 거지”라고 할머니는 입버릇처럼 말했다.

■관광객 틈바구니에 끼인 주민

“길거리에 관광객들이 빽빽했어. 양손에 장바구니를 들고 있는데, 걸리적거리고 부딪히니까 대로를 이용할 수 없었지. 결국 골목길로 빙 둘러서 집에 갔단 말이야.”

이날 세탁소를 방문한 유영현 할아버지(79)가 관광객 때문에 겪은 고생을 풀어냈다. 할아버지는 시내와 동네를 잇는 유일한 마을버스를 타는 것부터 수난이 시작된다고 말했다. 20인용 마을버스에 관광객과 함께 콩나물시루처럼 버스를 타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 감천동 주민 전용으로 운행된 ‘행복버스’가 있었지만, 코로나19 당시 재정 악화로 중단됐다.

어느새 오후 5시. 한참 이야기하던 할아버지는 시간을 보더니 자리에서 일어선다. 세탁소 의자에 앉아 있던 할머니도 무릎을 짚고 일어나 퇴근을 준비한다.

할머니는 텃밭이 있는 친척 집에 방문한다며 길을 나섰다. 감천문화마을 입구는 혼잡 그 자체였다. 편도 1차선의 좁은 도로에는 관광객을 실어 나르는 대형 관광버스 5대가 줄을 잇고 있었다. 버스가 횡단보도를 막은 탓에 사람들이 차량 사이로 도로로 나가는 위험천만한 모습도 보였다. 가이드 깃발을 든 일본인 가이드는 긴장한 모습으로 ‘안전’을 강조하며 30명의 관광객 무리를 통제하려 애쓴다. 금요일 저녁 마을의 풍경은 주말에 비하면 그나마 덜 붐비는 것이라고 한다.

북새통 도로 속 마을버스는 올 기색이 없었다. 〈부산일보〉 취재진과 할머니도 관광객 틈바구니서 열심히 길을 비집고 나아간다. 할머니는 관광지로 박제된 주민의 삶을 위한 최소한의 대책을 바라고 있다. 하지만 “버스고 뭐고 죄다 관광객 위주로 운영되고 주민들은 찬밥 신세 아니겠나…”라는 할머니의 넋두리는 관광객들의 소음 속에 묻혀 곧 사라졌다.



양보원 기자 bogiza@busan.com , 김준현 기자 joo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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