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키부츠의 눈물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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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년. 12명의 젊은 남녀 유대인이 갈릴리 호수 남쪽의 황무지에 모여들었다. 당시 유럽에서 급증하는 반유대주의를 피해서 ‘유대인 유토피아’를 건설하기 위해서였다. 동유럽 유대인 집단거주지인 게토에서 자란 이들은 농사 경험이 전무했지만, 황량한 불모지를 억척스럽게 개간해 오아시스로 만들었다. 원주민인 아랍인들의 잦은 공격에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한 손에 총을, 한 손에 농기구를 들어야 했다. 그 과정에서 집단 방위와 집단농업공동체인 이스라엘의 첫 번째 키부츠(Kibbutz) 데가니아가 성공했다.

2000년간 나라를 잃고 세상을 떠돌던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은 1948년 국가 설립에 성공했다. 1950년대에는 이민자들이 속속 합류하면서 214개의 키부츠가 설립돼 6만 800여 명이 거주했다. 초창기 키부츠는 동유럽 공산주의 철학과 유대인의 시온주의가 절묘하게 결합됐다. 종교와 대가족 공동체를 운영하면서 각자 능력껏 벌어 필요에 따라 나눠 쓰는 방식을 택했다. 버는 건 자본주의, 분배는 공산주의 방식이었다. 최근에는 농촌 관광, 인쇄업, 미술관 등으로 영역을 확장하면서 수익과 고용 창출에도 적극적이라고 한다.

이스라엘과 대한민국은 나라를 잃은 슬픔과 교육열, 근면성 등 닮은 측면이 많다. 1970년대 농촌 근대화의 주축이었던 한국의 새마을운동도 키부츠가 모델로 전해지고 있다. 당시 새마을운동 원조들이 키부츠에서 훈련받은 뒤 세부 실천 계획을 세웠다고 한다. 코로나 팬데믹 이전에는 한국 청년들이 키부츠에 자원봉사자로 참여해 유대인의 탈무드 정신을 배우고, 세계적인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기회로 삼기도 했다.

최근 ‘유대인의 작은 유토피아’ 키부츠가 불에 타고 피로 물들었다는 소식에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가자지구에서 넘어온 팔레스타인 하마스 무장 괴한들이 학살을 저지른 베에리·크파르 아자 키부츠 등은 아름다운 경관과 관광, 문화 현장으로 유명했던 곳이다. 이 농촌 마을들이 거대한 공동묘지로 변했다고 한다. 무장 괴한들이 아기들까지 잔혹하게 살해하고 가족들을 몰살시킨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전쟁이 아무리 잔혹한들 이런 적은 없었다. 폭력과 광기에 애꿎은 어린아이들과 민간인들이 희생되고 있는 셈이다. 잔혹한 민간인 학살과 납치는 사태 해결이 아니라, 피의 보복이란 악순환을 부를 뿐이다. 증오는 증오를 낳고, 그 상처는 결코 치유되지 않는다. 인질의 조속한 석방과 평화가 자리 잡기를 기도한다.

이병철 논설위원 peter@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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