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여는 시] 사랑하는 까닭 / 한용운(1879~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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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홍안만을 사랑하지마는 당신은 나의 백발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내가 당신을 그리워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미소만을 사랑하지마는 당신은 나의 눈물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내가 당신을 기다리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건강만을 사랑하지마는 당신은 나의 죽음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 시집 〈님의 침묵〉(1926) 중에서

사랑하는 것은 ‘작은 나’를 버리고 ‘더 큰 나’를 맞는 일이다. 상대를 진정으로 사랑하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작은 생각에 갇혀 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대상의 일면을 넘어 전체를 보듬게 될 때 사랑은 비로소 생명을 얻게 된다. 그때 사랑은 감각적 만족이나 위안이 아니라 삶의 의미를 알게 하고, 큰 세계 속으로 자신의 존재성이 고양되어 가는 것을 느끼게 한다.

한용운 시인도 이를 말하고 있다. 사랑하는 당신은 나의 일면적 모습인 ‘홍안 미소 건강’만 보는 것이 아니라, 전체로서 ‘백발 눈물 죽음’까지 보듬어 준다. 그 사랑은 나의 존재를 온전히 의미 있게 한다. 나의 전부를 사랑해주는 당신이기에 나 역시 당신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임의 사랑 이상으로 나 또한 당신을 사랑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 시의 의미다. 그렇다면 ‘나의 죽음도 사랑하는’ 당신 같이 되려면, 나의 마음은 도대체 얼마나 커져야 할까? 죽음까지 흔드는 사랑의 소리를 낼 수 있으면 가능하리라. 김경복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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