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전쟁이 드물지 않은 시대의 한가로운 정치

전창훈 기자 jch@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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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에 이스라엘도, 전쟁의 시대 도래
고통 받는 시민 모습, 평화의 소중함 절감
두 전쟁 도화선은 정치·리더십 위기에 기인
적대 정치로 분열 심화된 우리 다를 바 없어

“세계가 이전과는 다른 궤도로, 불행히도 나쁜 쪽으로 흘러가는 것 같아.” 최근 들은 한 지인의 이 말에 공감하는 이들이 적지 않을 것 같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당시 막연했던 불안감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종교·영토 전쟁이 재연되면서 선연한 공포감으로 다가온다. 전쟁이 드물지 않는 시대가 다시 도래했다는 생각 말이다.

어찌 보면 역사에서 끊이지 않은 전쟁 사이에 찾아온 잠시의 평화가 영구적일 것이라는 미몽에서 깨어나는 시간일지도 모르겠다. 이 잔인한 파괴의 바람이 한반도 주변으로 넘어와 대전쟁의 시대로 가는 최악의 문이 열리는 일은 상상하기조차 두렵다. 평화로운 음악제 중에 하마스의 무차별 살육에 희생된 청년들, 이스라엘의 소개령에도 국경이 막혀 오도 가도 못하는 가자지구 피난민의 절규는 70년을 위태롭게 이어온 살얼음 평화라도 얼마나 소중한지 우리에게 외치는 듯하다.


두 전쟁이 일어난 과정을 보면 내부의 문제, 특히 신뢰를 상실한 정치의 타락이 도화선 역할을 했다. 우크라이나는 1991년 독립 이후 지속된 친서방과 친러시아 세력 간의 끝없는 분열이 러시아의 오판을 자극한 측면이 있다.

우리에겐 ‘안보 롤 모델’ 격인 이스라엘을 상대로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승산 없는 싸움을 건 배경에도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전횡이라는 내부 요인이 있었다. 자신의 ‘사법 리스크’ 해소를 위해 초강경 극우 정당과 손을 잡고, 반이슬람 과격 행동을 일삼는 인물을 안보장관에 임명하는 무리수를 뒀다. 그 장관이 예루살렘 내 이슬람 성지인 알아크사를 무턱대고 방문해 이슬람을 도발했고, 하마스는 지난 7일 공습 작전명을 ‘알아크사 홍수’로 지어 이번 공격이 그 사건과 직결돼 있음을 분명히 했다.

물론 전쟁의 원인은 보다 다층적이고, 외교 전문가들은 이라크전 이후 미국의 대외 영향력 감소로 인한 힘의 공백이라는 더 깊은 배경을 지적한다. 그러나 오스트리아 황태자 피격이라는 우연한 사건이 1차 대전을 촉발했듯, 유증기가 가득한 갈등의 화약고에서 신뢰 잃은 리더십은 폭발의 불씨로 작용하기에 충분했다.

우리 내부를 들여다보자. 북한이라는 하마스와는 비교할 수 없는 군사적 위협을 앞에 둔 우리 정치는 두 나라와 얼마나 다른가? 오직 반대와 무시, 적대와 증오 속에 외교·안보마저 정쟁화하는 우리 정치는 북한의 오판을 막을 수 있을까? 정부·여당은 전임 정부의 대북 유화정책을 ‘거짓 평화’로 규정하면서 ‘힘에 의한 평화’를 연일 외치고 있다. 사문화 위기에 처했다고 해도 남북 간 무력 충돌을 현저하게 줄인 9·19 군사합의의 효력 정지를 가장 시급한 안보 과제인 것처럼 말한다.

그런데 과연 군사분계선 내 정찰을 강화하면 이스라엘 ‘아이언 돔’과 같은 실패를 막을 수 있는지, 자칫 북한의 호승심을 자극하는 것은 아닌지 불안해 하는 시민들이 적지 않다. 그저 홍범도 장군 흉상 논란과 같이 지지층만 보는 ‘ABM(anything but Moon·문재인 빼고 다)’의 연장선인 거 같아 우려스럽기도 하다.

평화를 원하면 전쟁에 대비해야 한다는 말에 공감하지 못할 이는 없다. 그러나 전쟁을 각오하는 것과 전쟁을 해도 상관 없다는 태도가 같을 수가 없다. ‘응징’ ‘보복’은 어디까지나 전쟁을 막기 위한 언어여야 한다. 강경 일변도인 정부의 대북 메시지를 걱정하는 모든 사람이 굴종을 해서라도 전쟁을 피하려는 나약한 평화주의자는 아니다.

실패한 북한 비핵화 정책에 대한 반성 없이 정부·여당 때리기에 골몰해 정체성마저 부정하는 야당의 모습에서 희망을 발견하기도 난망하다. 러시아의 침략 전쟁에 대해 “초보 정치인이 러시아를 자극해 벌어진 전쟁”이라며 피해자인 우크라이나를 비난하고, 정부의 우크라이나 지원을 두고 “중국 러시아와 관계를 포기하느냐”고 반발하는 건 민주주의와 평화를 핵심 가치로 내세운 민주당의 자기 부정이다. 이런 정치가 위기 앞에서 편 가르기를 멈추고, 국민적 단합을 이뤄내리라 기대할 수 있을까.

6개월 뒤면 두 세력 중 어느 손에 국정 주도권을 쥐어줄지 선택의 순간이 온다.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참패한 여권은 뒤늦은 혁신으로 부산하고, 구속 위기에서 벗어난 이재명 대표 체제의 민주당은 ‘배신자 징계’로 어지럽다. 늘 그렇듯 이번 총선의 어젠더는 결국 계파 안배를 둘러싼 내부 권력 다툼일 테고, 선거전은 상대와의 작은 차이를 더 벌리면서 경쟁 후보를 악마화하는 이전투구의 전장이 될 것이다. 선거 제도의 태생적 속성이지만 점점 실체로 다가오는 위기 앞에 우리 정치가 너무 사소하고, 너무 한가롭지 않나 하는 생각을 떨치기 어려운 요즘이다.

전창훈 서울정치팀장 jch@busan.com


전창훈 기자 jch@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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