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 병원 폭발 진실 드러날까… “비행체 방향 급전환 뒤 번쩍”

이현정 기자 yourfoot@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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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자지라 영상서 폭발 장면 확인
구덩이 직경·깊이 수십cm 불과
바이든도 “테러조직 로켓 때문”
미 ‘이스라엘 지지’에 분노 확산

19일(현지 시간)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무너진 가자지구 남부 칸유니스 난민촌 건물에서 구조대원이 부상한 소년을 밖으로 옮기고 있다. EPA연합뉴스 19일(현지 시간)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무너진 가자지구 남부 칸유니스 난민촌 건물에서 구조대원이 부상한 소년을 밖으로 옮기고 있다. EPA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8일(현지 시간) 이스라엘을 찾아 전폭적인 지지 의사를 거듭 밝히면서 중동 지역에서 이스라엘에 더해 미국을 향한 분노까지 표출돼 중동을 둘러싼 세계 정세가 대혼란에 빠졌다. 바이든 대통령은 미 국방부 데이터를 근거로 가자지구 알아흘리 병원 폭발에 이스라엘의 책임은 없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진실 공방은 계속되고 있다. 폭발이 누구의 책임이냐를 떠나, 전쟁을 둘러싼 편 가르기는 더욱 심화되고 있다.

■알아흘리 병원 폭격 진실공방 계속

가자지구 알아흘리 병원 폭격사태의 진상을 놓고 진실공방도 계속됐다.

지난 17일 오후 6시 59분 아랍권 뉴스매체 알자지라 방송이 송출한 20초 분량의 영상을 보면 어둠이 깔린 가자 상공에서 빠르게 고도를 높여가던 비행체가 갑작스레 섬광을 내뿜으며 방향을 급전환한 뒤 폭발하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소셜미디어 상의 오픈소스 정보를 분석한 결과 하마스 군사조직 알카삼 여단이 이 시각 이스라엘 주요 도시를 겨냥한 로켓 공격을 진행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는 영국 일간 가디언 보도도 나왔다. 알카삼 여단이 텔레그램에 업데이트한 내용에 따르면, 17일 오후 7시에는 이스라엘 남부 항구도시 아슈다드, 7시 3분에는 수도 텔아비브에 대한 ‘로켓 폭격’을 수행했다. 이 와중에 하마스는 이스라엘이 병원을 폭격해 ‘끔찍한 학살’을 저질렀다는 내용이 담긴 성명을 언론에 배포했고, 팔레스타인 민간인 사상자가 늘어나는 상황을 걱정스레 지켜보던 국제사회의 우려가 단번에 폭발하는 결과를 낳았다.

그러나, 이튿날 날이 밝으면서 드러난 알아흘리 병원 주변 모습은 예상과는 달랐다. 항공 폭탄에 맞아 거대한 구덩이가 파이고 폐허가 됐을 것이란 우려와 달리 구덩이 직경과 깊이도 수십cm에 불과해 이스라엘군의 대형 탄두로 생겨났다고 보기 어렵다는 게 서방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영국 싱크탱크 왕립합동군사연구소의 저스틴 브롱크 선임연구원은 영국 BBC방송에 당장 결론을 내리긴 힘들지만 정황을 보면 고장 난 로켓 추진부가 병원 주차장에 떨어지면서 연료가 폭발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이스라엘군은 하마스 첩보원 간의 대화라는 녹취 음성을 엑스(X·옛 트위터)에 공개했다. 여기에는 “이건 이슬라믹 지하드 것” “파편을 보면 이스라엘 것이 아니라 이쪽 지역 것처럼 보인다고 한다” 등 내용이 담겼다.

이스라엘군은 저질 재료로 값싸게 만든 하마스 로켓 무기들은 예전부터 신뢰도가 낮기로 악명이 높았다면서 하마스가 이번 분쟁에서 발사한 로켓 중 무려 450발이 비행 중 고장으로 이스라엘에 닿지 못한 채 가자지구에 떨어졌다고 강조했다. 반면 러시아 관영 스푸트니크통신은 “하마스가 이스라엘 공격 때문이라는 증거를 국제기구에 제시할 것”이라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이스라엘 편 든 미국 향한 분노 커져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이스라엘을 찾아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궤멸을 위해 지상군 투입을 준비 중인 이스라엘에 전례 없는 안보 지원을 약속했다. 이에 더해 팔레스타인 주민도 하마스의 피해자로 규정하면서 가자·서안 지구에 대한 1억 달러(약 1300억 원) 규모의 인도적 지원 방침을 밝히고 이번 갈등의 근본 해결책이 ‘두 국가 해법’임을 재차 강조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텔아비브에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내각을 만난 뒤 연 단독 기자회견에서 가자지구 병원 폭발 참사에 대해 “가자 내 테러리스트 그룹이 잘못 발사한 로켓의 결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 이스라엘판 9·11 테러로 불리는 하마스의 기습 공격과 관련, “정의는 실현돼야 한다”면서도 “분노를 느끼되 그것에 휩쓸리지 마라. 9·11 이후 미국은 정의를 찾았으나 우리는 실수도 했다”고 언급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스라엘에 가자지구 주민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위한 통로 개방을 요청했고, 이스라엘은 이집트에서 가자 지구 남부로 구호 물품이 이동하는 것을 허용하겠다고 밝혔다.

미국 CNN방송은 그러나 이날 바이든 대통령의 이스라엘 방문에 대해 8시간이 안 되는 일정에서 내세울 만한 실질적인 성과는 거의 없다고 평가했다. 로이터통신은 바이든 대통령이 당초 이번 중동 방문의 또 다른 목적이었던 확전 방지 노력 등과의 균형을 어떻게 잡을지는 불분명하다고 짚었다. 미 일간지 뉴욕타임스는 중동에서 이스라엘은 물론 이스라엘에 대한 확고한 지지를 표명한 미국에 대한 반감과 분노도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레바논 베이루트 외곽의 미국 대사관 앞에서는 이날 수백 명의 시위대가 “미국에 죽음을” “이스라엘에 죽음을”을 외치며 돌을 던지고 인근 건물에 불을 질렀다.

미국에서는 '평화를 위한 유대인의 목소리' 소속 활동가 약 200명이 미 의회의사당 부속건물인 캐논하우스 내 원형 홀을 점거하고 가자지구에서의 무력충돌을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이들은 "바이든은 이스라엘을 압박할 힘을 지닌 유일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이현정 기자 yourfoot@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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