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MoCA, 오늘 만나는 미술] 관조와 갈등의 픽처레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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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철교 ‘일광 칠암 전원마을(2017년)’

18세기 이후 유럽의 픽처레스크 양식은 자연과 폐허, 또는 자연과 산업물을 함께 보여주면서 삶과 몰락의 순환을 목도함과 동시에, 상실감을 경험하고 그 경험에서 인생을 성찰하게 만드는 요소를 가진다. 산업혁명 시기의 픽처레스크 회화들은 자연과 산업화의 결과물이 유기적으로 결합된 것처럼 그리고 있지만, 실상 모순적으로 병치시켜서 인간이 발명한 혁명적 기술이 곧 몰락하는 문명의 상처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부산현대미술관 소장품인 정철교 작가의 ‘일광 칠암 전원마을(2017년)’과 픽처레스크 양식에서 느껴지는 몰락의 ‘상실감’ 사이에는 접점이 있다. 이 작품의 배경은 앞이 툭 트인 바다와 양지 바른 너른 들판, 푸른 바다와 솔숲이 있는 천혜의 풍광 좋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 일광 칠암 전원마을이다. 그러나 바다 건너 멀리 고리 원전이 보인다. 아름답지만 위험하고 불안한 느낌이 늘 상존하고 있는 풍경이다.

화면 전체를 덮고 있는 붉은색은 급변하는 풍경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 작가 특유의 언어와 같다. 작가는 농담과 밝고 어두움만으로 그림을 그렸다. 이를 통해 관조적이면서도 강렬한 느낌, 그리고 그 속에 낯설고 이질적이며 불안한 정서를 무심히 표현한다.

정철교 작가의 붉은 작업은 그가 웅상읍 매곡마을을 떠나 2010년 울주군 서생면 덕골재길 작업실로 이주하면서 시작된다. 2011년 신고리 3·4호기가 건설되면서 지역의 풍경이 바뀌게 된다.

어디에서나 눈에 밟히는 발전소의 둥근 돔, 늘어가는 송전탑, 어지러운 전선들은 작가가 바라보는 풍경을 ‘고장’내 버린다. 작가는 ‘붉은 서생 풍경’을 화폭에 담기 시작했다.

정 작가는 극단적으로 탈핵이나 반핵을 작품으로 주장하지는 않는다. 원전 시설의 확장으로 사라지는 풍경과 떠나는 사람들에 대한 상실감을 화폭에 담았고, 이 풍경의 이름을 작가는 ‘고장 난 풍경’이라고 불렀다. 발전소가 끼어든 풍경은 온전한 삶의 풍경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일광 칠암 전원마을(2017년)’은 현재의 시간과 역사적 시간을 담고 있다. 이런 작업들은 시간을 잠시 정지시켜 우리들에게 반성적 성찰을 가지게 한다.

김가현 부산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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