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읽기] 심연을 유머로 감싼 독일 대작가 귄터 그라스 유고집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유한함에 관하여/귄터 그라스

<유한함에 관하여>. 민음사 제공 <유한함에 관하여>. 민음사 제공

<유한함에 관하여>는 독일 대작가 귄터 그라스(1927~2015)의 유고집이다. ‘유머로 가득한 이별’이란 부제가 붙었다. 책을 옮긴 장희창 전 동의대 교수에 따르면 그는 독일 민주주의 교사였다. 나치즘의 광기 어린 폭력을 고발하고 과거사를 거듭 일깨우며 민주주의 토대를 다지는 데 평생을 바쳤다. 그런 큰 작가를 지닌 독일은 현재 과거사를 어느 정도 극복했다고 한다. 친일 과거사가 여전히 작동하는 한국과 다르다는 것이다.

장 전 교수의 해설에 눈길이 간다. ‘제자리걸음을 하는 듯한 역사의 반복 앞에서 지치지 않기는 힘들다.’ 귄터 그라스는 ‘역사라는 것은 막힌 변기와도 같아서 씻어내리려고 물을 붓고 또 부어도 똥물만 차오른다’며 통단했다. 똥물 상황은 우울증을 유발하기 쉽다. 그러나 귄터 그라스는 말했단다. “우울증이라는 것은 마음을 어둡게 하지만 또한 통찰력을 주는 것이어서 심연을 밝게 비추기도 한다. 우울은 유머의 밑그림 같은 것이다.” 뒷걸음치는 우울한 역사적 상황이 심연을 비추는 통찰력을 제공한다는 그 통찰력으로 우리는 버틸 수 있을 것인가. 그래야 한다는 소리다.

귄터 그라스는 시시포스를 끊임없이 말했다. ‘산 위에 올라가면 굴러떨어진다. 그게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독일이 그랬고, 우리가 그렇다. 그때 귄터 그라스는 “좋아! 좋아! 그렇다면 다시 한 번 더”라는 되새김을 들려준다고 한다. 인간과 역사의 한계가 새로운 출발점이자 가능성이라는 것이다. 90편이 넘는 짧은 산문에서 이것들을 읽어내는 건 독자의 몫이다. 귄터 그라스 지음/장희창 옮김/민음사/190쪽/2만 2000원.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