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나의 아저씨'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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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단한 하루 끝에 떨구는 눈물/ 난 어디를 향해 가는 걸까/ 아플 만큼 아팠다 생각했는데/ 아직도 한참 남은 건가 봐/ 어떤 날 어떤 시간 어떤 곳에서/ 나의 작은 세상은 웃어줄까!” 드라마 ‘나의 아저씨’ OST ‘어른’ 중에서.

최근 마약 사건에 연루된 배우 이선균으로 인해 드라마 ‘나의 아저씨’(2018년)가 다시 소환되고 있다. 드라마는 부인의 불륜으로 가정이 파탄나고, 직장 사내 정치에서 짓밟히는 등 그다지 행복하지 않은 중년 샐러리맨 박동훈 부장(이선균 분)이 남자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엔지니어링 회사의 건축구조기술사로 안전진단 부서장인 동훈은 평생 사채꾼에 쫓기면서 단 한 번도 행복을 경험하지 못한 20대 파견직 여직원 이지안(아이유 분)을 보살피다 그 스스로도 위안 받는다.

남성호르몬이 급속히 줄어드는 중년 아저씨의 감수성 탓일까. 총 16편 드라마를 정주행하면서, 정글 같은 세상에서 지치고 상처받은 사람들이 서로를 통해 마음을 치유하는 모습에 울컥했던 기억이 있다. “상처받은 아이들은 너무 일찍 커버려” “망가져도 행복할 수 있구나” “경직된 인간들은 다 불쌍해” “살아온 날들을 말해 주잖아” 등 명대사의 여운은 여전히 가시지 않는다.

백미는 ‘외력과 내력의 싸움’이다. 건물 안전 진단 전문가인 동훈은 “모든 건물은 외력과 내력의 싸움이야. 있을 수 있는 모든 외력을 계산하고 따져서 그보다 세게 내력을 설계하는 거야. 항상 외력보다 내력이 세게! 인생도 어떻게 보면 외력과 내력의 싸움이고, 무슨 일이 있어도 내력이 세면 버틸 수 있는 거야”라고 말한다. 이제는 마약에 의지해 스스로의 ‘내력’이 무너져 그 대사를 읊조릴 자격조차 없지만, 이선균의 입을 빌은 박동훈 부장의 메시지는 지친 아저씨들을 지탱하는 힘이 되기도 했다.

2023년 찬란한 가을의 정점에 서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러시아와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의 여파, 불확실한 경제, 고된 직장생활, 비정규직과 실직, 빠른 은퇴와 질병 등 현실의 아픔은 고민만큼이나 짙어져 간다. 그래도 가을과 인생의 정점에 선 아저씨들 모두 “무슨 일이 있어도 내력이 세면 버티는 거야”를 되뇌면 좋겠다. 그래야 다가올 겨울과 싸울 수 있기 때문이다. 가끔은 더 힘든 이웃에게 “괜찮아. 아무것도 아니야”라고 다독이면서, ‘나는 누군가에게 좋은 아저씨였던 적이 있었나’ ‘나의 삶이 누군가에게 한 줌의 온기라도 전해줬을까’라는 자문도 하기를 바란다.

이병철 논설위원 peter@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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