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세상의 깊이, 자신의 깊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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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석 문학평론가

손흥민 프리미어리그서 맹활약
영국의 축구 열정에 자주 놀라
경기 예측·분석 전문 지식 존중

한국 사회는 전문성 무시 기류
자신이 지닌 지식을 과대 해석
합리적 조율되는 세상 만들어야

최근 손흥민이 프리미어리그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그와 그의 축구에 관한 관심이 더욱 확대되고 있다. 아시아 전역에서 이 독특한 아시아 선수가 세우는 기록에 주목하고 있고, 서구권에서는 손흥민의 특별한 영향력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거꾸로 손흥민의 경기를 접하면서, 영국의 축구 열정에 은근히 놀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오랫동안 축구에 진심이었던 이들답게, 축구를 대하는 그들의 안목은 남달랐다. 경기를 앞두고는 승패와 전세에 관한 예측이 쏟아지고, 경기 중계는 박진감 넘치게 진행되며, 경기 후에는 다양하고 독창적인 분석을 통해 그날의 골 장면이나 전술의 효용성이 드러나곤 한다. 어떨 때는 분석에 분석이 이어지며, 1~2주가 지나도 논란이 계속될 때도 있다.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축구에 지나치게 빠져 있다고 타박하던 기존 생각을 조금 바꾸었다. 그들은 이미 일반인을 넘어 전문가의 수준에서 축구를 즐기고 있었다.

관람자 수준이 이러하니, 이들을 상대해야 하는 축구 전문가의 고충은 상상 이상일 것 같다. 해설 패널들은 자신들이 바라본 축구 경기의 특징과 이면을 자신만의 언어로 분석해내야 하며, 그만큼이나 축구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호소력 있게 전달하고 공감을 이끌어내야 한다. 그렇게 그들은 축구라는 세계를 삶의 일부분으로 삼으면서도, 그 분야의 전문 지식을 존중하는 사회로 나아갈 수 있었다. 이 지점은 정말 주목된다. 한국 사회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특징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요즘 한국 사회는 각 분야의 전문성을 무시하는 기류로 가득 차 있다. 각종 정보의 범람과 확산이라는 수혜를 받으면서, 많은 이들이 자신들이 전문 지식에 육박하는 교양을 갖추고 있다고 믿게 되고, 이를 통해 전문가의 판단력에 도달해 있다고 속단하게 된 것 같다. 관련 사안에 대한 전문가의 소견을 소홀하게 여기거나, 도리어 다른 분야 종사자가 내세우는 견해를 더욱 우월한 가치로 받아들이는 현상을 자주 목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성향은 자신이 지닌 지식을 과대 해석하고 절대적으로 받아들여 해당 분야의 전문성을 무시하고, 자신의 역량만으로도 세상의 일반적인 이치를 통제할 수 있다는 믿는 이들에서도 공통으로 발견되는 성향이기도 하다.


본래 검사들은 사회 일각에서 법률을 조율하며, 공동체 질서가 무리 없이 돌아가도록 돕는 조력자들이었다. 그들이 전문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 분명하고, 그들이 가진 지식이 우리 사회의 중요한 핵인 것도 분명하지만, 그들의 지식이 세상을 일방적으로 지배하거나 그들 자체만으로 그 어떤 전문성보다 위에 있다고는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고 속단한 검사들이, 세상을 원하지 않던 위험으로 몰아넣고 말았다.

그 결과는 정말 참혹하다. 그것이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세상이다. 반드시 바로잡아야 할 정의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전문성을 앞장세워 사회 각 분야를 초토화하고 있는 이른바 사이비 전문가들의 부상은 우리가 사는 세상의 얄팍한 모습만 확인시킬 따름이다. 우리가 바란 세상은 얕은 지식에 의해 통제되어야 하는 일방적인 세상이 아니다. 우리가 바란 세상은 삶의 각 분야에서 얻은 각자의 전문성이 존중받는 세상이어야 한다. 각 분야의 전문성이 깊게 존중되어, 우리 세계의 더욱 깊숙한 영역까지 합리적으로 조율되는 세상이어야 한다.

축구 경기 한 경기만 보아도, 그 전문성에 따라 서로 다른 공감을 얻을 때가 적지 않다. 아름다운 축구와 그에 못지않게 전문적인 해설은 늘, 생각의 차이를 확인시킨다. 그리고 그러한 차이는 우리가 보고 접하는 세상에 대한 깊이까지 생각하도록 만든다. 그 깊이가 사라진 세상에서 보면, 그 깊이는 무엇보다 소중했음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꼭 지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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