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수강생 4명 한국어강좌를 석·박사 갖춘 정규학과로 만든 김혜정 교수

박석호 기자 psh2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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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살라망카대에 2000년 처음 한국어강좌 개설

2000년 첫 개설 땐 수강생 4명뿐
지금은 전공 학생 100명 '인기 과'
한국 사랑하는 사람 만든다는 보람

김혜정 교수가 스페인 살라망카 대학의 교수 연구실에서 <부산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박석호 기자 김혜정 교수가 스페인 살라망카 대학의 교수 연구실에서 <부산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박석호 기자

“수강생 4명의 교양과목에서 시작해 지금은 교수 10명에 석·박사 과정까지 갖춘 정식학과가 됐습니다”

스페인 사람들이 한국이라는 나라를 제대로 알기도 전에 스페인 살라망카 대학에 한국어학과를 개설한 김혜정(62) 교수를 현지에서 만났다. 스페인 북서부 카스티야이레온주에 있는 살라망카는 수도 마드리드에서 서쪽으로 190km가량 떨어져 있는 대학도시다. 주립 종합대학인 살라망카 대학은 1218년에 설립됐다. 세계에서 세 번째로 오래된 대학이라고 한다.

한국외대에서 스페인어를 전공한 김 교수는 스페인 국비 장학생으로 마드리드 콤플르텐세 국립대에서 석사 과정을 마쳤다. 마드리드국립대 박사 학위 입학허가서를 받은 그가 살라망카 대학으로 방향을 튼 것은 이 대학이 워낙 어문학으로 유명하고, 이 도시가 가진 매력 때문이었다.

김 교수는 “한국 사람 입장에서 보면 너무 조용하고 심심한 도시이지만 중세시대 정취가 그대로 살아있고, 치안도 뛰어나다”면서 “평안한 연구에만 매진할 수 있었다는 점이 제 마음을 사로잡았다”고 말했다. 처음엔 스페인 문학 연구와 문학비평에 주력했다.

박사 학위를 마치고 2000년 살라망카 대학 전임교수가 된 그는 또 다른 도전에 나섰다. 그 무렵 이 대학 부총장이 한국어강좌 개설을 부탁했고, 김 교수는 겁도 없이 스페인 학생들을 대상으로 우리말 교육에 뛰어들었다.

기대와 달리 첫 학기 수강생은 단 4명에 불과했다. 김 교수는 “한국을 이렇게 모르나 싶을 정도로 실망했고, 너무했다 싶었지만 그래도 내가 처음으로 스페인에서 한국어 교육을 시작했다는 자부심으로 버텼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김혜정 교수가 스페인 살라망카 대학에서 한국어 강의를 하고 있다. 박석호 기자. 김혜정 교수가 스페인 살라망카 대학에서 한국어 강의를 하고 있다. 박석호 기자.

김 교수는 매학기 각 학부를 돌면서 수강생 모시기에 나섰다. 해가 갈수록 한국어 강좌의 인기는 높아갔고, 2010년부터 어문대학 공식 부전공어로 승격됐다. 당시 일본학은 재팬 기금(Japan Foundation), 중국학은 공자학당이라는 본국 정부의 도움으로 부전공어 승격을 위한 교원이 파견됐지만 한국학은 별다른 지원이 없어서, 김 교수 혼자서 전임강사 두 사람 몫의 강의를 했다.

김 교수의 헌신적인 노력이 결실을 맺어 2015년에 학사·박사 과정, 2020년에 석사 과정이 만들어졌다. 박사 과정이 먼저 만들어진 것은 해당 분야에 부교수(종신직) 이상 교원이 있으면 현대어문학과 박사 과정에 한국학 전공을 등록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지금은 100명이 한국어 전공 학생이고, 부전공 학생이 200명 정도라고 한다. 한국어학과 교수도 10명이 됐고, 살라망카대학 어문학부에서 가장 인기있는 학과로 자리매김했다. 스페인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대학은 살라망카 대학과 말라가 대학 2곳인데 석·박사 과정까지 갖춘 곳은 살라망카 뿐이다.

김 교수는 “K팝 등 한류의 영향으로 스페인 학생들 사이에 한국에 대한 관심이 폭발하고 있다”며 “얼마 전엔 동아시아학 강의에서 어떤 교수가 K팝을 비하하는 발언을 했는데 학생들이 분노해서 항의편지를 썼다. 굉장히 모욕감을 느꼈다고…. 한국을 이렇게나 사랑하는구나 하고 느꼈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학기에만 주 14시간을 강의한다”면서 “바쁘게 살고 있지만 한국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 가장 큰 보람”이라고 덧붙였다.

최근엔 부산 출신의 정유경 박사가 살라망카대 한국어과에 합류해 이번 학기부터 강의를 한다고 했다. 정 박사는 부산 삼성여고와 동아대 일문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후쿠오카 큐슈대학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다 스페인으로 왔다.

살라망카(스페인)/글·사진=박석호 기자


박석호 기자 psh2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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