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몰리는 환자 되돌리려면 지역 의료 전폭 지원 필수

서유리 기자 yool@busan.com , 손희문 기자 moonsl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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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울경 암환자 24만 명 ‘빅5’ 내원
경증 질환 치료도 ‘서울 병원’ 선호
지역 의료 불신→ 수도권행 악순환
셔틀버스 투입 등 격차 더 벌어져
의사 증원 등 대책만으론 역부족

지역의 의료 인력이 수도권으로 유출되면서 수도권 대형 병원에 환자 쏠림 현상이 가속화하고 있다. 지난 18일 서울 강남구 수서역 앞 버스정류장에서 서울 시내 대형 종합병원 셔틀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 연합뉴스 지역의 의료 인력이 수도권으로 유출되면서 수도권 대형 병원에 환자 쏠림 현상이 가속화하고 있다. 지난 18일 서울 강남구 수서역 앞 버스정류장에서 서울 시내 대형 종합병원 셔틀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 연합뉴스

지역 의료 인력이 모두 수도권으로 집중되면서 환자들도 서울로 몰리고 있다. 환자 유출이 가속화되면서 지역의 자원과 역량은 자연히 떨어지고, 이는 결국 지역 의료에 대한 신뢰 하락으로 이어진다. 환자들이 다시 수도권으로 발길을 돌리게 만드는 악순환이 계속 이어지는 구조다. 보건복지부가 지난 19일 지역의료와 필수의료를 살리기 위해 필수의료 혁신전략을 마련했으나, 이미 고착화된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기엔 어려울 것이란 예측도 나온다.

■중증·경증 환자 모두 서울로

경남 진주시에 사는 박 모(67) 씨는 지난해 복통을 호소하며 쓰러졌다. 응급실에서 대장암 2기라는 사실을 알게 된 박 씨는 고민 끝에 소위 서울의 ‘빅5 병원’ 중 한 곳에서 수술을 받았다. 수술 후에는 6개월 동안 경남 창원시의 한 요양병원에서 지내며 회복기를 가졌다. 수술 후 3~6개월 간격으로 추적 관찰을 위해 서울을 방문해야 하나, 서울의 병원에서 수술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박 씨는 “주변에서도 서울에서 수술하라고 권유했다. 또 이 병원은 경남에 분원도 두고 있어서 간단한 검사를 할 때는 굳이 서울까지 가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중증 질환이 아니더라도 지역의 환자들은 서울 수도권 병원으로 향한다. 가능하면 유명한 의사, 최첨단 장비, 시설·서비스가 좋은 병원에서 치료받고 싶다는 이유에서다. 부산에 사는 김 모(31) 씨는 지난 27일 ‘빅5 병원’ 이라고 불리는 곳에서 자궁근종 수술을 받았다. 김 씨는 수술할 병원을 선택하기에 앞서 인터넷 카페 등을 통해 정보를 얻었다. 3박 4일에 걸쳐 서울의 병원 4곳을 돌며 상담을 받았고, 그중 가장 괜찮은 병원을 선택해 수술 날짜를 잡았다. 김 씨는 “생명과 직결된 질환은 아니지만, 수술 후에 임신 계획도 있어 수술 케이스가 많고 최첨단 장비를 사용하는 병원에서 수술받고 싶었다. 친절하고 서비스도 좋아 만족한다”고 말했다.

지역 환자의 원정 진료는 2000년대 들어 가속화됐다. 1998년 환자의 진료 지역을 제한하는 진료권이 폐지됐고, 2004년 KTX가 개통되면서 전국이 반나절 생활권이 됐다. 또 인터넷을 통한 정보 공유가 활발해지면서 ‘명의’를 찾아 서울로 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이 됐다.

환자가 물밀듯 몰려오는 유명 병원의 경우 장비와 시설에 대한 투자도 아끼지 않는다. 셔틀버스나 친절 서비스 등까지 겸비하니 지역과의 격차는 점점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더불어민주당 김영주 의원에 따르면, 최근 5년간 비수도권에 거주하는 100만 명 이상의 암 환자가 ‘빅5 병원’에서 진료를 받았다. 부울경 지역민의 경우, 부산 8만 5000명, 울산 3만 1000명, 경남 11만 9000명이었다. 이들은 비수도권 의료 인프라 부족으로 인해 교통비나 숙박비·주거비 등을 추가 부담하면서까지 치료를 받고 있다.

■고리 끊으려면 ‘전폭 지원’ 필수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보건복지부는 지역 국립대병원을 ‘빅5 병원’ 수준으로 육성한다는 대책을 발표했다. 인력과 장비 등 인프라에 대해서도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는 방침인데, 현장에서는 원정진료라는 거대한 흐름을 끊어내기엔 역부족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부산의 한 대학병원 관계자는 “지역의료가 붕괴된다는 말이 나온 지가 15년도 넘었다. 제때 손 쓰지 못한 탓에 격차는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벌어졌다”면서 “지금 낸 대책이나 의대 정원 확대 등이 효과를 낼지도 미지수지만, 효과를 내더라도 환자들의 인식이 바뀌는 데까지 10년, 15년은 더 걸릴 것으로 본다. 격차를 따라잡으려면 지역에 대한 더욱 전폭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부산대 의대 출신의 한 의사도 지역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이 해결책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예전에는 서울대를 못 갈 바에 지역국립대를 가자고 했지만, 지금은 그런 말이 사라졌다. 서울과 지역의 격차가 심해졌기 때문”이라면서 “의대 정원을 늘린다 하더라도 소수의 지역대학에 전폭적인 지원을 하는 것이 한 방법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서유리 기자 yool@busan.com , 손희문 기자 moonsl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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