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명장'에게 거는 기대

정광용 기자 kyjeo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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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광용 스포츠라이프부 에디터

롯데, 1999년 가을야구 정점 후 추락
김응용 감독 영입 이후 반등 삼성과 대조
김태형 감독, 보치 같은 지도력 발휘하길

1999년 가을야구는 잊지 못한다. 그해 프로야구는 드림리그, 매직리그 양대 리그제로 운영됐다. 가을야구에선 드림리그 1위가 매직리그 2위, 드림리그 2위는 매직 1위 팀과 플레이오프(7전4승제)를 치르고, 이긴 팀이 한국시리즈(7전4승제)에서 맞붙는 방식이었다.

당시 1경기 차로 드림리그 2위(75승 5무 52패)를 차지한 롯데 자이언츠는 매직리그 1위(73승 2무 57패) 삼성 라이온즈와 플레이오프에서 격돌했다. 롯데는 4차전까지 1승 3패, 벼랑 끝에 몰렸다. 5차전도 8회까지 3-5로 뒤져 패색이 짙은 상황. 9회말 마지막 공격 1사 1·2루에서 펠릭스 호세가 삼성 마무리 투수 임창용에게서 끝내기 3점포를 때려내면서 대역전극을 연출했다.

기자는 당시 사직구장 현장에서 이 경기를 직관했다. 좌중간 담장을 넘어가는 역전 홈런의 짜릿한 전율은 여전히 생생하다.

5차전 역전승의 기세를 탄 롯데는 6·7차전을 연거푸 잡아내며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대구 원정 경기로 열린 7차전도 롯데 팬에겐 명경기였다. 3-5로 뒤진 9회초 고 임수혁이 극적인 투런 홈런으로 동점을 만들었고, 연장 11회 김민재의 적시타로 6-5 역전승을 거뒀다.


아쉽지만 우승은 못 했다. 플레이오프에서 힘을 소진한 탓에 한화 이글스를 상대로 한 한국시리즈에서 1승 4패로 무릎 꿇고 말았다. 비록 우승은 놓쳤더라도 1999년의 가을야구는 ‘불멸의 대투수’ 최동원의 투혼으로 우승한 1984년 한국시리즈만큼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런데 그럴 줄은 몰랐다. 이후 24년이 지나도록 롯데가 한국시리즈 무대를 다시 밟지 못할 줄은….

사실상 1999년 가을을 기점으로 롯데와 삼성의 행보는 극명하게 엇갈린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시리즈 4회 진출에 두 번 우승한 롯데는 2001년부터 그 유명한 ‘8888577(순위)’의 암흑기를 맞는다. 제리 로이스터와 양승호 감독 시절 5년 연속 가을야구에 진출하는 성과를 거뒀지만, 한국시리즈엔 오르지 못했고 2017년(3위)을 제외하고 2013년부터 올해까지 11시즌 중 10시즌을 가을 없는 찬 겨울만 보냈다.

반면 삼성은 1990년대까지 정규리그에 강했으나, 유독 가을을 타는 약점이 있어 한국시리즈 패권을 한 번도 가져보지 못했다(1985년은 전·후기 통합 우승으로 한국시리즈 무산). 단기전에 약한 체질을 바꾼 건 김응용 감독이었다. KIA 타이거즈의 전신인 해태 시절 한국시리즈 9회 우승의 위업을 이룬 명장 김응용 감독을 2001년 삼성이 전격 영입한 것이다.

김응용 감독의 삼성은 2002년 기어코 한국시리즈 우승의 한을 풀었고, 이후 선동열·류중일 감독이 지휘봉을 이어받으며 한국시리즈 6회 우승을 더해 ‘삼성 왕조’ 시대를 구축했다. 명장 김응용 영입 이후 삼성은 완전히 달라졌다.

롯데도 김태형이란 명장을 모셔 왔다. 김 감독은 2015년부터 2021년까지 두산을 7년 연속 한국시리즈로 이끌었고, 3차례 챔피언에 등극시킨 현역 최고의 명장이다. 물론 감독 한 사람이 팀 전력을 급상승시키진 못한다. 선수 구성이나 프런트의 지원 등이 어우러져야 한다.

하지만 롯데 구단이 김 감독을 최고 대우로 영입한 자체가 엄청난 변화다. 그동안 롯데는 주로 초보이거나 경험이 일천한 지도자를 영입했다. 롯데의 초보 사령탑은 타 구단과 달리 거의 성과를 내지 못했다. 그래서 김 감독 영입은 구단의 우승에 대한 의지가 드러난 것이고, 그만큼 팬들의 기대도 뜨거운 것이다.

올해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월드시리즈는 텍사스 레인저스와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의 대결로 압축됐다. 텍사스를 월드시리즈로 이끈 건 브루스 보치 감독이다. 보치는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감독 시절 팀을 3차례 월드시리즈 정상에 올려놓은 명장이다. 2019년 은퇴했으나 4년 만에 현역으로 돌아오자마자 만년 하위팀 텍사스를 가을야구로 이끌었다.

보치의 이력에서 김 감독이 오버랩된다. 둘 다 포수 출신이고 선수 시절(김 감독 타율 0.235/보치 0.239)은 화려하지 않았으나, 지도자로 반전을 이뤘다. 가을야구에 강하고 세 차례 우승을 지휘했다. 포스트시즌 통산 승률도 비슷하다. 김 감독이 36승 24패 승률 0.600을 기록했고, 보치 감독은 1일 현재 57승 37패 승률 0.606을 작성 중이다.

보치 감독이 지도자로 복귀한 시즌에 팀을 가을야구로 진출시켰듯, 1년간 사령탑에서 물러난 뒤 다시 지휘봉을 잡은 김 감독에게도 내년 롯데의 가을을 기대하고 싶다.

kyjeong@busan.com


정광용 기자 kyjeo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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