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영이 심장을 단 아이는 병원 밖 세상과 처음 만났습니다”

안준영 기자 jyou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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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사 학대로 투병 끝 장기기증
심장병 앓던 아이에게 심장이식
이식 받은 아이 주치의 감사편지

신생아실 학대 피해로 의식불명 상태였던 아영 양의 생전 모습. 유가족 제공 신생아실 학대 피해로 의식불명 상태였던 아영 양의 생전 모습. 유가족 제공

심각한 뇌세포 손상으로 아영이는 끝내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했다. 그렇기에 네 살배기 아영이가 겪었던 고통의 크기는 어느 누구도 헤아릴 수 없다. 부모는 다만 아영이가 하늘나라에선 아프지 않고 자유롭길 바랐다. 아영이는 올 6월 심장, 폐, 간, 신장을 기증하고 세상을 떠났다(부산일보 6월 30일 자 2면 등 보도). 아영이 아버지는 딸의 곁에서 “다시 만날 때까지 즐겁게 하늘나라 소풍하며 잘 지내고 있어 달라”고 기도했다.

아영이 부모는 최근 이름 모를 아이의 주치의로부터 편지(사진) 한 통을 받았다. 아영이로부터 심장을 기증받은 아이를 400일 가까이 돌본 의사였다. 심장 이식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고, 아이는 새 생명을 선물 받았다. 병원 다인실 창문을 통해 보던 세상이 전부였던 아이는 비로소 흙바닥을 밟으며 또래들처럼 지내게 됐다.

주치의는 “제 환자는 돌 무렵 심부전으로 입원했고, 심실보조장치에 의존해 400일 넘게 병원에 갇혀 지내던 아이였다”며 “병원 밖을 처음 경험하는 아이는 모든 걸 새롭고 신기해하고 있다. 아이가 누리는 평범한 일상은 모두 아영이 덕분”이라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그는 “환자의 심장이식 수술이 있던 날, 아영이가 기증을 선택했다는 소식을 접했다”며 “이날만을 하염없이 기다리던 제 환자의 가족과 저는 숙연해질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너무 감사하고, 너무 죄송해서 감히 편지를 쓰기가 어려웠다”며 “이 아이의 심장이 오래오래 뛸 수 있게 최선을 다해 돌보겠다. 세상에 이로움이 되는 선한 아이가 되길 곁에서 돕겠다”고 약속했다.

아영이는 2019년 10월 20일 부산 동래구의 한 산부인과 신생아실에서 태어난 지 닷새 만에 바닥으로 떨어져 두개골 골절상 등을 입었다. 사건 이후 아영이는 생명 유지에 필요한 일부 활동 외에는 혼자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됐다. 아이의 부모는 방광에 관을 삽입해 소변을 빼냈고, 기계를 목에 넣어 힘겹게 우유를 먹였다. 아이가 나아질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야속하게도 아영이의 뇌세포는 계속 사라져만 갔고, 지난 6월 28일 심정지에 빠져 사망 판정을 받았다.

아영이를 내동댕이친 간호사는 대법원에서 징역 6년을 확정받았다. 이 간호사는 아영이를 비롯해 신생아실 아기 14명을 상습적으로 학대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하지만 이 간호사는 아영이의 상해가 태생적인 문제이거나 출산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자신도 임신을 한 상태로 3일 연속 밤 근무를 해 스트레스가 컸다고도 진술했다. 법원은 이 같은 주장을 받아들이지는 않았지만, 업무상 과실치상 등 혐의로 징역 6년을 확정했다.

피고인은 재판부에는 반성문을 여럿 제출했지만, 아영이 아버지에게는 지금껏 연락 한번 없었다. 무참한 학대 행위로 아영이는 물론이고 온 가족이 평생을 고통받게 됐지만, 가해자는 6년 뒤면 세상 밖으로 나온다.

아영이 아버지의 SNS 프로필은 ‘힘내자’는 소개 글과 함께 여전히 아영이의 재판 일정과 기록들로 편철돼 있다. 형사 재판은 대법원에서 확정됐지만, 2019년부터 시작된 민사 소송은 여전히 부산지법에서 진행되고 있다.


안준영 기자 jyou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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