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여는 시] 스며드는 것/안도현(19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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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게가 간장 속에

반쯤 몸을 담그고 엎드려 있다

등판에 간장이 울컥울컥 쏟아질 때

꽃게는 뱃속의 알을 껴안으려고

꿈틀거리다가 더 낮게

더 바닥 쪽으로 웅크렸으리라

버둥거렸으리라 버둥거리다가

어찌할 수 없어서

살 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한때의 어스름을

꽃게는 천천히 받아들였으리라

껍질이 먹먹해지기 전에

가만히 알들에게 말했으리라

저녁이야

불 끄고 잘 시간이야

-시집 〈간절하게 참 철없이〉(2008) 중에서

‘시’는 천지의 슬픔을 전해주는 말이다. 시인을 ‘곡비(哭婢)’라 부르는 것도 세계의 슬픔을 알아채고 이를 대신 울어주는 사람이라는 데에서 나온 이름이다. 시에서 슬픔과 혼의 떨림을 느끼지 못했다면 그것은 좋은 감상이 아니다. 시는 보는 이의 영혼을 정화하는 눈물이다.

안도현 시인의 이 작품이야말로 독자의 심금을 울려 영혼을 씻고 있다. ‘꽃게’가 인간 욕망으로 죽어가는 과정을 그 생명의 입장에서 그려냄으로써 시의 권능을 뿜어내고 있다. 특히 아무리 발버둥치도 벗어날 수 없는 죽음을 ‘한때의 어스름을/ 천천히 받아들였으리라’라고 하는 것과 그 죽음의 공포를 알들이 몰랐으면 하는 어미의 곡진한 마음을 ‘저녁이야/ 불 끄고 잘 시간이야’라고 표현한 부분은 너무 깊은 울림을 느끼게 해 고통스럽다. 고통 속에서 우리는 생명에 대한 연민의 감정으로 세계가 왜 저마다 가치 있는 존재로 있는지를 알게 된다. 세계에 대한 사랑이 싹트는 것이다. 김경복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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