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희와 함께 읽는 우리 시대 문화풍경] 지역 현실에 걸맞은 국가문화예술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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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 대학원 예술·문화와 영상매체협동과정 강사

지난 13일 서울에서 열린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무용계 현장간담회. 연합뉴스 지난 13일 서울에서 열린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무용계 현장간담회. 연합뉴스

문체부에서 문화예술정책을 새로 내놓을 모양이다. 지원제도 혁신, 인재 양성과 일자리 창출, K콘텐츠 경쟁력 강화가 골자다. 지역 균형발전을 위한 전략도 포함됐다. 국립예술단체의 지역 순회 확대와 지역예술단 신설이 그것이다. 아직 구체적인 계획을 확정하지는 않았다지만 지역 문화예술 진흥을 이끄는 실질적인 마중물이 되기를 바란다. 새정부가 들어서거나 문체부 장관이 교체될 때마다 흔히 있는 의례에 그치지 않았으면 더할 나위 없겠다. 지역의 문화 현실과 지역의 목소리를 세심하게 살피는 일로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지난주 유인촌 장관이 국립예술단체장들을 만나 지역 순회공연과 전시를 논의했단다. 국립예술단체들이 ‘훌륭한’ 작품을 선보여 지역민들이 문화적 혜택을 골고루 누리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다. 지역 순회공연이 지역에 주는 문화적 혜택이라는 인식은 단선적이다. 이러한 시혜성 지원 정책 아래 지역이란 과연 존재하기라도 하는 걸까. 베를린필이나 메트 오페라, 영국국립극장 영상 콘텐츠의 수준 높은 카메라워크에 이미 익숙한 지역 관객에게 예술의전당 공연영상물이 실망을 안겨주었던 일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공연시설이 열악한 지역은 테크라이더(tech rider)의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하기 어렵고, 공연장이 부족한 지역은 무대를 내어주는 일 자체가 부담이 될 수 있다.

내년부터 기초지자체 5곳을 선정해 시범 실시한다는 지역예술단 신설도 마찬가지다. 오늘날 지자체가 운영하는 예술단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 지역이 얼마나 많은가. 오디션조차 폐지하며 예술적 성과보다는 사적 권익을 추구하다 보면 예술단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을 잃게 마련이다. 제도의 비호 속에 단순한 직업단체로 전락하는 모습은 새로운 일자리 창출을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지역소멸 시대에 예술단이 어떤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으며, 지역 예술인들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겠는가. 뒷날에는 예술단 운영을 위한 예산 부담이 오롯이 지역에 전가될 가능성이 높다.

해방기 부산을 찾은 서울의 교향악단 공연은 부산 관객들에게 일종의 스펙터클과 같았다. 20명 남짓한 부산관현악단보다 규모가 3배나 컸으며, 드보르작과 베토벤 교향곡을 연주했다. ‘서울교향악후원회’를 조직하여 매년 초청하자고 제안할 만큼 큰 호응을 얻었다. 이러한 전통은 1990년대 말까지 지속되었지만 점차 인기가 시들해졌다. 지역에도 공연예술 단체들이 많아졌고 수준 높은 공연 관람 기회가 확대되었기 때문이다. 문화예술이 서울과 지역의 위계를 강화하는 수단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국립예술단체의 지역 순회나 구색 맞추기식 예술단보다는 지역과 밀도 높게 소통해온 지역 예술인들의 활동 기반을 강화하는 일이 더 시급하다. 국가문화예술정책이 지역 예술인들과 지역민의 목소리에 환하게 응답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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