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안에 근원적인 슬픔을 지닌 인간의 삶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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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민 시인 세 번째 시집 출간

추상은 너무 크다. 그 속에 종잡을 수 없는 많은 것이 담긴다. 기실 크다는 것은 숨기는 것이다. 아니 숨기면서 드러내는 것이 추상의 모양새이자 전략이다. 안민 시인의 세 번째 시집 <몸 안의 슬픔이 너무 많이 사냥 당했다>(여우난골)는 ‘추상’으로 간다. 4부 51편의 시를 꿰는 것은 ‘몸 안의 슬픔’이다. 그 슬픔은 ‘깨어져 버릴 관능’과 관련 있다.

시집 맨 앞, 첫 번째 시에서 가장 구체적이고 충격적인 막내 이모의 자살 사건이 나온다. 당시 시인은 열여섯 살쯤이었다. 그 이모는 ‘아름답고도 가는 목’을 지녔는데 ‘내 눈동자는 그 몸의 신비에 침잠하곤 했’다는 것이다. ‘근친 지대’를 어른거렸는데 ‘그러나 언제나 들켜야 하는 것 또한 나의 운명이었’던 바, 아마도 일기장에 써놓은 것이 발각돼 아버지 혐의의 눈빛 아래 ‘오랫동안 왜소와 열등을 앓았다’는 것이다.

안민 시인. 부산일보 DB 안민 시인. 부산일보 DB

인간 속에는 ‘몸 안 물관부를 타고 끝없이’ 도는, ‘혹은 뒤집히기도’ 하는 ‘파도’ 같은 것, ‘어둠에 섞여’ ‘달라붙던 허기’ 같은 것이 있다. 그것은 통상 욕망이라고 하는데, 이런 허기와 파도가 존재하는 것은 몸에 허무의 동공인 듯한 ‘구멍’이 뚫려있기 때문이다.

그중 ‘가장 쓸모없는 구멍. 이것으로 인해 인간은 평생 십자가를 져야 한다’, 이들 구절이 있는 시 제목은 ‘9+1’이다. ‘9’는 몸의 9개 구멍을 말하고, ‘+1’은 몸 그 자체가 하나의 큰 구멍이라는 걸 뜻하는 것 같다. 몸은 아예 ‘구멍들의 집’인데 ‘몸은 이 모든 업 때문에 폭풍의 바다로 향한다’는 것이다. ‘구멍으로부터 끝없이 입력되는 인과와 연으로 밤마다 불면에 시달리며.’

그의 시에는 잠언적 톤이 있다. ‘이것은 진언의 독백이다… 그 속의 음률은 사멸치 않고 유계까지 퍼져갈 것임을 나는 안다.’ 아픈 독백의 음률이 저승까지 이어진다는 것은, 시적 과장의 낌새가 상당하면서도 인간에게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게 있다는 거고, 상처가 그만큼 깊고 본원적이라는 말일 테다.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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