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의 트럼프’밀레이, 대통령 당선… 중국 외교 단절할까

권상국 기자 ks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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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심 이반 등에 업은 괴짜 우파
달러화 도입·중앙은행 폐쇄 등
선거 기간 과격한 공약 앞세워
“중국과 거래 끊을 것” 선언도
남미 정치 지형 변화에 ‘촉각’

하비에르 밀레이 아르헨티나 대통령 당선인이 19일(현지 시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대선 결선 투표 결과를 들은 후 여동생과 함께 기뻐하고 있다. 밀레이 당선인은 이날 투표에서 개표율 91.81% 기준 55.86%의 표를 얻어 44.13%를 득표한 집권당의 세르히오 마사 후보를 따돌렸다. 연합뉴스 하비에르 밀레이 아르헨티나 대통령 당선인이 19일(현지 시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대선 결선 투표 결과를 들은 후 여동생과 함께 기뻐하고 있다. 밀레이 당선인은 이날 투표에서 개표율 91.81% 기준 55.86%의 표를 얻어 44.13%를 득표한 집권당의 세르히오 마사 후보를 따돌렸다. 연합뉴스

연평균 인플레이션 140%가 넘는 경제난에 허덕이는 남미 아르헨티나에서 ‘괴짜’ 극우파 정치인이 대통령에 당선됐다.

자유전진당 하비에르 밀레이(53) 후보는 19일(현지 시간) 대선 결선 투표에서 55.7%를 득표해 현 집권 세력인 ‘조국을 위한 연합’ 후보로 나선 세르히오 마사 경제장관을 따돌리고 당선인 신분이 됐다.

밀레이 당선인은 지난달 본선 투표에선 29.99%의 득표율로 마사 후보(36.78%)에 밀렸다. 그러나 1위와 2위 후보 맞대결로 치러진 이날 결선 투표에서 역전 드라마를 연출했다. 밀레이 당선인은 내달 10일 임기 4년의 대통령에 취임한다.

밀레이 당선인은 기성 정치권에 대한 민심 이반을 등에 업고 혜성처럼 등장했다. 2021년부터 하원 의원을 지내고는 있지만, 정치적 존재감은 거의 없던 ‘아웃사이더’였다. 그러다 지난 8월 대권 향배를 가늠할 수 있는 예비선거에서 중도우파 연합 파트리시아 불리치 전 치안장관과 마사 후보를 누르고 깜짝 1위를 차지하며 돌풍을 일으켰다.

자신을 ‘자유주의자’라고 정의한 밀레이 당선인은 페소화를 달러로 대체하는 달러화 도입, 중앙은행 폐쇄, 장기 매매 허용 등 다소 과격한 공약을 내세우며 ‘새 판을 짜자’는 전략으로 지지층을 결집했다. 이 같은 행보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것과 닮아서 현지에서는 ‘아르헨티나의 트럼프’라고 불린다.

밀레이 당선인은 당선이 확정되자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내에 준비된 단상에 올라 “오늘 아르헨티나의 재건이 시작된다. 19세기에 자유경제로 부국이었던 아르헨티나의 잃어버린 번영을 되찾겠다“며 당선 포부를 밝혔다.

특히 밀레이 당선인은 후보 시절 대미 외교 강화와 함께 중국과의 ‘손절’을 공언한 만큼 중남미 블록의 대외 노선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그간 아르헨티나 좌파 정권은 중남미 주요국 중 제일 먼저 ‘일대일로(중국과 중앙아시아, 유럽을 연결하는 육상·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에 협력할 정도로 중국과 가까웠다.

이번 대선에서 낙선한 좌파 집권당 후보 마사 경제장관도 중국에 공을 들였다. 아르헨티나 기업이 중국산 제품을 수입할 때 위안화로 결제하게 하고, 보유 외환에 위안화 비율을 늘리는 정책 역시 현 정부 작품이다. 그러나 밀레이 당선인은 선거운동 기간 “미국과의 외교를 강화하고, 중국과는 거래하지 않을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밝혀왔다.

한편, 밀레이의 당선으로 최근 중남미 대륙을 쓰나미처럼 덮었던 ‘핑크 타이드(온건 좌파 정부 물결)’의 기세가 아르헨티나의 ‘극우 방파제’에 가로막혔다는 평이다. 아르헨티나에서 극우를 포함한 우파 후보의 집권은 2015년 마우리시오 마크리 전 대통령 이후 8년 만이다.

앞서 2018년 멕시코를 시작으로 페루와 볼리비아, 칠레, 브라질의 민심은 잇따라 좌향좌를 선택했다. 콜롬비아에선 역대 첫 좌파 정권이 탄생하기도 했다. 이들은 온두라스, 니카라과, 베네수엘라, 쿠바 등과 함께 이념적으로 뭉쳤고 특정 이슈에서 한목소리를 내며 세를 과시해 왔다. 이 같은 정치 지형의 변화로 내년 2월 엘살바도르 대선, 5월 파나마와 도미니카공화국의 대선과 총선 등이 주목을 받게 됐다.


권상국 기자 ks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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