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단상] 강권하는 선배가 되고 싶다

장병진 기자 joyfu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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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진 디지털총괄부장

사회 초년생일 때 선배들의 조언 중 하나는 “작게라도 먼저 집을 사라”는 것이었다. 큰 집이든 작은 집이든 일단 집을 산 뒤 시세 차익을 통해 조금씩 더 큰 집으로 가는 것이 당연한 순서라는 것이다. 월세로 내는 돈이나 은행 대출로 내 집 마련한 후 내는 이자나 비슷한 시기이기도 했다.

그 때도 ‘집값이 너무 비싸다’라는 생각은 있었지만 선배들은 “나중에 말 안 들은 거 후회한다”며 참 많이도 강권했다. 누구나 그렇듯 작은 집에서 조금씩 큰 집으로, 조금 더 살기 좋은 곳으로 가는 것이 당연했기에 할 수 있는 강권이었다. 누구나 열심히 일하고 저축하면 내 집 마련을 넘어 더 큰 집 마련도 할 수 있던 ‘주거 사다리’가 단단하던 시기이기도 했다.

부동산 담당 기자가 되면 “선배 집 사야 됩니까”라는 질문을 종종 듣는다. 사회 초년생들에게 내 집 마련은 삶의 안정적 터전을 마련하는 것이자 가장 중요한 재테크 수단이다 보니 조언을 구하는 셈이다. 하지만 예전 선배들처럼 자신있게 “일단 작은 집에서 시작하고 이 집부터 조금씩 키워”라고 강권하기가 쉽지 않다.

이유는 작은 집에서 시작했을 경우 더 좋은 집으로 가는 게 더 어려울 것 같아서다. 부동산 빅데이터 기업 ‘부동산지인’에 따르면 지난 1~9월 부산의 아파트 가격 상위 20%인 5분위 아파트의 매매가격은 1.13% 상승한 반면, 4분위는 -2.38%, 3분위는 -4.08%, 2분위는 -5.13%, 1분위는 -5.37%를 기록했다. 여전한 하락장에서 1, 2분위 저가 아파트는 가격의 낙폭은 여전히 크지만, 고가 아파트들은 가격 방어를 넘어 반등하고 있다. 고가 아파트와 저가 아파트의 간극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사회초년생에게는 부담스러울 수 있는 3, 4분위 아파트도 역시 하락세다.

이를 단순히 숫자만 보고 판단하면 ‘땡빚’을 내서라도 비싼 집을 사는 게 맞다. 감당할 수 있는 적당한 가격의 아파트를 구매하는 건 경제학적으로 옳은 판단이 아니다. 더 좋은 주거지로 갈 수 있는 ‘사다리’가 느슨해졌기 때문이다.

경제학적으로 옳은 선택인 고가 아파트를 사는 것이지만 아쉽게도 소득은 그만큼 증가하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부산의 주택구입물량지수는 매년 낮아지는 추세다.

이 지수는 중위소득가구가 보유한 순자산과 소득을 기준으로 대출을 받았을 때 살 수 있는 해당 지역의 아파트 비율을 나타낸 수치다. 부산의 주택구입물량지수는 2019년 66.1이었지만, 2022년엔 44.6으로 떨어졌다. 2019년엔 부산의 중위소득가구가 대출을 끼면 100채 중 66채를 살 수 있었지만, 지난해엔 44~45채에 그쳤다는 의미다.

아직 축적한 자산이 부족한 후배들, 그리고 지역 청년들에게는 이 수치는 더욱 가파르게 떨어질 것이다. 3포를 넘어 5포(연애, 결혼, 출산, 내 집 마련, 인간관계 포기)까지 이야기하는 후배들에게 “작게라도 먼저 시작해”라고 말하기가 더 어려울 것 같아 걱정이 앞선다. 청년 시절 가장 큰 자산은 집일 터인데 행여나 집값이 떨어져 후배들에게 욕을 먹을 거 같아 더 조심스럽기도 하다.

단단했던 사다리가, 열심히 일하고 저축해서 돈 벌면 집 살 수 있다고 강권하던 선배들의 모습이 그리운 요즘이다.


장병진 기자 joyfu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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