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위기의 죽방렴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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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가 스스로 들어가서 갇히고 사람은 그렇게 갇힌 물고기를 건져 내기만 하면 되는, 기특하면서도 원초적인 어로 시설이 죽방렴이다. 죽방렴을 두고 생태어업이라 추켜세우는 이도 있다. 어차피 잡아먹을 거면서도, 그물이나 낚시와는 달리 물고기를 상처 입히지 않고 잡는 ‘착한’ 어로 행위라서 그렇단다.

방렴(防簾)은 물고기를 잡는 발이다. 그 발을 대나무로 만든다 해서 죽(竹)방렴이다. 돌로 만드는 석(石)방렴도 있다. 둘 다 일종의 어살인데, 수심 얕은 곳에 설치해 밀물 때 들어온 물고기가 걸려들면 썰물 때 나가지 못하도록 하는 구조다. 지금 석방렴은 찾기 어렵고, 죽방렴도 경남 남해군 지족해협과 사천시 삼천포해협에서 겨우 명맥을 유지하는 형편이다.

여하튼, 죽방렴으로 잡는 물고기는 대부분 멸치였다. 남해에 멸치가 워낙에 많았기 때문이다. 죽방렴으로 잡은 멸치는 때깔도 곱고 맛도 좋았다. 죽방렴은 바다 유속이 빠른 곳에 설치하는 법인데, 거센 물살을 이기려고 나름 용을 써댄 탓에 육질이 단단해진 멸치를 별다른 상처를 입히지 않은 채 잡아 올린 덕이다. 때깔 곱고 맛 좋으니 비쌀 수밖에 없다. 남해 죽방렴 멸치는 다른 일반 멸치보다 서너 배는 더 값을 치러야 구할 수 있었다.

죽방렴으로 잡는 멸치는 여러 종류인데, 이 즈음엔 대멸이 주종이다. 그런데 죽방렴 안에 가득 차야 할 멸치가 요즘 씨가 말라 어민들이 연일 탄식이라는 소식이다. 멸치를 걷으려 죽방렴을 찾아도 보이는 건 쓰레기뿐이라는 게다. 지난 6월 이후 유달리 심하다고 한다.

사실은 죽방렴만이 아니다. 우리나라 남해에 멸치가 사라지고 있다. 10년 전에 비해 어획량이 절반으로 줄었다. 멸치 개체가 줄어들다 보니 죽방렴 멸치도 보기 어렵게 된 것이다. 바다 환경, 정확히는 수온이 바뀐 탓이다. 근래 남해 앞바다 수온은 예년보다 2~3도 높은 것으로 보고된다.

어쩌면 죽방렴이 사라질지도 모르겠다. 문헌 기록으로만 그 유래가 500년이 넘었고, 국가무형문화재에다 국가중요어업유산으로 지정된 죽방렴이다. 이젠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의 세계중요농업유산 지정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멸치가 안 잡히는데 그런 치사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세상사 변하지 않는 게 없다지만, 이대로 인류의 문화유산 하나가 사라질 수도 있다 생각하니 서글플 따름이다. 기후변화 탓이라 하니 누구를 원망할 텐가. 마냥 넋 놓고 있을 수밖에 없는 노릇이라 그래도 화증이 슬몃 돋는다.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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