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메가 이벤트도 좋지만…

이자영 기자 2you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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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영 사회부 차장

아쉽게 실패한 엑스포 부산 유치
인구 감소·수도권 일극화 극복 등
지역 현안 해결 만병통치약 아냐
시민 행복한 도시 만들기가 먼저

2030세계박람회(월드엑스포) 부산 유치는 실패로 돌아갔다. 세계 3대 메가 이벤트(월드컵 올림픽 세계박람회)를 모두 개최한 일곱 번째 나라가 되겠다는 꿈도 잠시 접어야 할 때다. 물론 개최 파급효과가 큰 이런 대규모 행사를 유치하는 것은 도시 발전에 있어 중요한 기회다. 인구가 감소하고 도시 활력이 저하되고 있는 부산의 위기를 타파할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는 희망도 있었다.

하지만 29일 새벽 2030월드엑스포 개최지 선정을 위한 투표 결과 발표가 있기 전부터 〈부산일보〉 기사에는 냉담한 댓글이 적지 않게 달렸다. 사회부에서 취재한 엑스포 유치 염원 행사 기사엔 ‘국가 일은 염원한다고 이뤄지는 게 아니라, 합리적인 수단으로 정부가 유능하게 외교를 했을 때 이뤄지는 거’ ‘관심 없고 거품 (낀) 집값이나 바로 잡아라’ ‘저도 부산 사람인데, 이게 뭐라고 난리죠? 제 주변에는 관심도 없는데…’ 등의 반응이 잇따랐다.


시민들의 냉소적 태도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동안 부산시를 포함한 일부에서는 엑스포 유치를 지역 현안 해결을 위한 만능 열쇠처럼 활용해 왔는지도 모른다. 엑스포만 유치되면 해묵은 문제가 다 해소될 것처럼 말이다. 무엇보다 가덕도신공항 건설, 연결 도로망 확충에 힘이 실릴 것이고 북항재개발사업에도 속도가 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그 과정에서 국비가 대거 투입되고 일자리도 생겨나 침체된 지역경제가 살아날 수 있을 거라는 희망도 품었다.

그러나 이런 사업들은 엑스포 유치와 상관 없이 부산시가 당연히 이뤄내야 할 당면 과제다. 정부 역시 당장 부산항 북항이 엑스포 행사장이 되지 않더라도 우리나라 최초의 항만 재개발 사례인 북항재개발사업을 성공시켜야 할 의무가 있다. 2030엑스포 유치 성공, 실패와 상관 없이 정부는 이 같은 사업에 전폭적인 예산 지원을 해야 마땅하다. 게다가 부산의 엑스포 유치 시도가 2030년에서 끝날 것도 아니지 않은가.

수도권 일극주의에 밀려 ‘제2도시’의 위상마저 흔들리고 있는 부산의 현실을 생각해 보자. 청년은 떠나고, 노인만 남았다는 자조 섞인 이야기를 언제까지 해야 할까. 과연 엑스포만 유치되면 청년이 떠나지 않는 도시가 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청년들이 지역에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좋은 일자리가 필수라는 사실을 모두가 안다. 부산시가 기업 유치, 스타트업 키우기에 사활을 걸어야 하는 이유다.

“원인도 알고, 해결책도 뻔한데 풀어낼 방법을 찾지 못한다.” 청년 유출, 인구 감소와 관련해 지역의 한 전문가는 이렇게 말했다. 수도권 일극주의가 그만큼 견고하다는 말이다. 수도권에 집중된 일극 체제를 서울·부산 양극 체제로 전환해 국토 균형발전을 추진하겠다는 윤석열 정부의 약속 역시 엑스포와 관계 없이 지켜져야 할 것이다.

이제는 부산시도 메가 이벤트 유치에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안전하고 행복한 시민의 삶을 꼼꼼하게 챙겨야 할 때다. 치솟는 물가와 고용 불안 등으로 팍팍해진 서민의 일상을 돌봐야 한다. 전세 사기 피해자 예방·구제책을 세심하게 마련하고, 늘어나는 노인 인구를 위한 복지정책 수립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최근 불고 있는 맨발 걷기, 일명 ‘어싱’(Earthing·지구에 몸을 연결한다는 ‘접지’의 의미) 열풍 사례만 봐도 시민들이 원하는 것은 생각보다 소소하다는 걸 알 수 있다. 대규모 기반시설 확충도 필요하지만, 집 주변 가까이에 편안하게 걸을 수 있는 산책로가 잘 정비되는 것 역시 삶의 질 향상에 중요한 요소다.

오는 2025년 열리는 오사카·간사이 엑스포와 관련해 일본 내에서 비판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는 뉴스도 참고해 볼 만하다. 일본국제박람회협회는 건설자재 가격과 인건비 상승 등에 따라 건설비 증액이 불가피하다면서 지난달 박람회장 건설 예상 비용을 2350억 엔(약 2조 620억 원)으로 제시했다고 한다. 이는 애초 전망치인 1250억 엔(약 1조 970억 원)의 1.9배에 달하는 수준이다.

엑스포 개최에 대한 일본 국민 반응도 좋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교도통신이 지난 3일부터 5일까지 104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68.6%는 “오사카 엑스포가 필요하지 않다”고 답했다고 한다. “필요하다”는 응답은 전체의 28.3%에 그쳤다.

시민들이 살고 싶은 도시는 단순히 엑스포 유치에 성공한 도시가 아닐 것이다. 출퇴근과 취미생활 등 하루하루의 삶이 만족스럽고 여유로운 도시, 관광객이 찾고 싶은 매력적인 부산 만들기가 먼저다. 그리고 이것이 2035년 엑스포 유치 재도전의 시작점이 돼 줄 것이다.


이자영 기자 2you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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