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한반도를 업고 달리다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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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군은 비록 가슴에는 일장기를 달고 가지만 등에는 한반도를 짊어지고 간다는 것을 잊어선 안 된다.” 1936년 1월, 베를린올림픽에 출전하는 7명의 조선인 선수를 격려하는 올림픽의 밤 행사. ‘조선 스포츠의 아버지’로 통했던 몽양 여운형이 건넨 축사는 결연했다. “열 번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야 한다.” 그는 선수들에게 강조하고 또 강조했다. 지금은 나라가 망했지만 언젠가 반드시 일어나야 한다는 것. 식민지 조선의 포기하지 않는 정신을 스포츠를 통해 끌어내고자 함이었다.

조선인 선수 중 남자마라톤에 출전한 이가 손기정과 남승룡이었다. 두 선수는 마침내 금메달과 동메달을 각각 거머쥐는 위업을 세운다. 하지만 당시 사진에서도 잘 알 수 있듯, 두 사람은 세상 누구보다 슬픈 얼굴이다. 시상대의 일장기를 보지 않으려고 고개까지 푹 숙이고 있다. 남승룡은 훗날 인터뷰에서 말했다. “손기정이 월계수로 일장기를 가릴 수 있다는 게 금메달 딴 것보다 더 부러웠다.” 가릴 수가 없었던 남승룡 상의의 일장기는 유독 도드라져 보인다.

사실 남승룡은 손기정에 비해 큰 관심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1932년 전일본선수권부터 1935년 일본건국기념 국제마라톤 대회까지 4년 연속으로 1위를 차지했고 올림픽 대표 선발전에서도 손기정을 제치고 우승한 당대 최고의 마라토너다. 남승룡은 특히 막판 스퍼트가 탁월했다. 베를린올림픽에서 조금 더 일찍 역주에 나섰다면 조선인 1, 2위 석권도 가능했으리라.

일장기의 설움을 날릴 기회가 남승룡에게 온다. 1947년 미국 보스턴마라톤 대회. 36세의 노장이지만 태극기를 가슴에 달고 뛰고 싶었다. 그는 제자이자 한국 마라톤의 젊은 피였던 서윤복 선수의 페이스메이커도 자처했다. 결국 서 선수를 세계신기록으로 우승시키고 자신도 12위의 성적을 거둔다. 그에게 ‘마라톤의 지휘자’라는 별칭이 어울리는 이유다. 이 일화는 영화(‘1947 보스톤’)의 감동으로 재탄생하기도 했다.

남승룡(1912~2001)이 28일 대한체육회가 주관하는 ‘2023 대한민국 스포츠 영웅’에 선정됐다. 조선 청년의 슬픔이 역사의 한을 푸는 데 87년 세월이 걸렸으니 늦은 감이 없지 않다. 근래 ‘중꺾마’(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 ‘막꺾마’(막판까지 꺾이지 않는 마음) 같은 말들이 유행한다. 일제강점기 억압의 상황 속에서도 포기할 줄 모르는 마라톤 정신으로 희망을 심어준 고인의 삶이야말로 그 정신적 시원이라 할 만하다.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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