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인은 어디에 있는가… 서화성 시집 '미인' 출간

최학림 기자 theos@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시력 23년 만에 여섯 번째 시집
“이뤄지지 않는 사랑, 그게 삶”

서화성 시인. 서화성 제공 서화성 시인. 서화성 제공

‘아름다운 사람’을 ‘미인’이라고 부른다. 우리는 아름다운 사람이 되고자, 또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고자 한다. 그런데 시력(詩歷) 23년 서화성 시인의 여섯 번째 시집 <미인>(천년의시작)에서 ‘미인’은 있다가도 없다. ‘미인’은 다가서면 없고, 잡을라치면 사라지고, 안타까운 흔적만 남아있을 따름이다. 우리 삶에서 아름다운 사람을 찾는 일은 그렇게 어렵다는 것이다. 그것이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의 본색, 그 운명이다.

시인의 시가 이번 시집에서는 자못 달라졌다. 어떤 아스라한 분위기가 감돈다. 시가 분위기의 직조라면 그의 시는 그것을 잘 해내고 있다. 그러나 궁금하다. 시를 읽다 보면, 그에게 ‘참을 수 없는 슬픔’의 미인이 있었던 것 같기 때문이다. 베란다에서 바다가 보이는 집에 ‘그녀가 한동안 머물다’ 갔는데, 살 날의 ‘숫자가 얼마 남지 않았’던 사연을 지녔던, ‘샤워기를 틀어 놓고 밤새도록 울었’던 미인이다. ‘그날 밤처럼 서럽게 우는 건 처음이었고’ ‘여자는 바다를 건너고 있었’다는 것이다. ‘통영을 다녀오고부터/여자는 문을 걸어 잠그고 울기 시작했다’.

그 미인은 세상을 달리한 것도 같다. 그런 미인의 사연을 품은 시집이라면, 이번 시집은 슬픔의 시집이다. 시인은 도대체 어떤 아픈 사랑을 했던 것일까. 그는 연극인이기도 한데, 시의 문면에는 ‘극적인 것’을 넘는 ‘실제 사연’이 있는 것 같다.

서화성 시인의 여섯 번째 시집 <미인>. 천년의시작 제공 서화성 시인의 여섯 번째 시집 <미인>. 천년의시작 제공

하지만 시인은 미인의 아픈 사연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릴 적 기억, 아버지와 어머니, 형제, 누이에 대한 아릿한 기억을 섞어놓는다. 그의 아버지는 삼십 년째 다니던 회사에 ‘사표를 내고 온 날’ ‘화풀이하듯 문을 꽝 차고 들어’왔는데 그때부터 ‘아버지는 혼잣말이 늘었고/끙끙 앓는 소리가 데굴데굴 굴렀다’는 것이다. 미인의 사연과 뒤섞으면서, 80~90퍼센트가 이뤄질 수 없는 회한 덩어리인, 결국 슬픔일 수밖에 없는 삶을 말하는 것이다. ‘젖은 빨래처럼 말을 하늘에 걸어놓고’ ‘못다 한 사랑을 기다릴 것이다’.

그는 ‘새로운 언어가 필요했고/새로운 모순이 필요했고’라고 적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사람을 밖에서 발견하는 것도 어렵고, 더욱이 내 안에서 발견하는 것은 더 어렵다. 요컨대 삶은 ‘미인은 무엇이다’ ‘미인은 여기에 있다’라는 것처럼 확답을 내놓은 과정이 아니라 ‘미인은 무엇일까’라며 끊임없는 질문하는 것에 불과할 따름이다. 질문은 있으나 답이 없는 형국이라고 할까. 그것이 우리 인간들의 운명이다.

‘노포오일장’란 시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오 일 동안 비가 내리던 어느 날이었다. ‘난전에서 장사하는 할머니 둘은/끼니를 감당 못 해/칠백 원짜리 컵라면을 빗물에 말아 먹고 있었다’. 삶과 사랑의 궁극적 표상으로서 미인을 찾아 나서나, 결국 빗물에 컵라면이나 말아먹고 있는 것이 우리 삶이다. 아 미인이여, 그대는 어디에 있는가.


최학림 기자 theos@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