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비건·사회공헌… ‘플렉스’ 대신 ‘가치소비’에 지갑 연다

서유리 기자 yo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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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 이면의 가치 따져 소비 판단
'자원 재활용' 리퍼브 시장 확대
윤리적 소비·이웃과의 상생 지향
기업의 ESG 경영 노력과 맞닿아

'푸드 리퍼브'의 일환으로 색상과 모양이 고르지 못한 일명 '못난이 채소'를 취급하는 CU의 '싱싱상생'브랜드. BGF리테일 제공 '푸드 리퍼브'의 일환으로 색상과 모양이 고르지 못한 일명 '못난이 채소'를 취급하는 CU의 '싱싱상생'브랜드. BGF리테일 제공

한때 ‘플렉스(FLEX)’로 대변되던 과시소비 트렌드가 저물고, ‘가치소비’가 새로운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다. 가치소비는 실용적이고 자기 만족적인 가치를 지향한다.

상품의 가격 이면의 가치에 대해 따져보고 소비를 판단하며, 가치가 있다고 판단할 경우 과감히 투자하기도 한다. 특히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가치지향적인 소비에 관심을 갖자, 기업도 이에 맞춘 제품을 발빠르게 선보이고 있다. 가치소비 트렌드는 최근 기업들이 공들이는 ‘ESG 경영’과도 맞닿아있다.



그랜드조선 부산이 내년 2월 29일까지 투숙객에게 가치소비 굿즈 세트를 제공하는 패키지 'Warm-hearted Winter'. 그랜드조선 부산 제공 그랜드조선 부산이 내년 2월 29일까지 투숙객에게 가치소비 굿즈 세트를 제공하는 패키지 'Warm-hearted Winter'. 그랜드조선 부산 제공

■리퍼브, 환경을 생각하다

최근 고물가로 인해 합리적인 가격에 물품을 구입할 수 있는 ‘리퍼브’ 상품이 인기를 끌고 있다. ‘리퍼브’란 고객의 단순 변심으로 반품됐거나 전시용으로 사용된 제품을 새 제품과 동일한 상태로 재생산해 할인된 가격으로 판매하는 제품을 말한다.

리퍼브 제품은 저렴한 가격이라는 장점뿐 아니라 ‘자원 재활용’이라는 측면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리퍼브 제품 구매가 ‘자원 재활용’으로 인식되면서, 친환경 가치소비에 중점을 두는 고객들에게 관심을 받고 있다.

최근 리퍼브 숍 매장에서 주방용품을 구입한 김 모(43) 씨는 “중고 제품을 찾아보다 마음에 드는 게 없어 리퍼브 매장을 찾게 됐는데, 생각보다 품질이 좋은 제품들이 많아 놀랐다”면서 “꼭 새 물건을 사야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환경을 생각해서라도 앞으로도 자주 이용할 의향이 있다”라고 말했다.

롯데쇼핑에 따르면, 실제 지난 1~10월 롯데마트의 리퍼브 상품 매출액은 지난해 동기간 대비 10배 늘어나기도 했다. 롯데마트에는 리퍼브 숍 브랜드 4곳(올랜드&올소, 그리니, 두원, 줌마켓)이 입점해 있다. 부산에는 가구·가전뿐 아니라 생활용품 등을 다루는 리퍼브 매장이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리퍼브에서 한발 더 나아간 ‘푸드 리퍼브(식자재 재활용)’도 유통계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외형적으로 상품 가치가 떨어진 농산물이나 음식을 저렴하게 할인 판매하는 것을 말한다. 못난이 농산물을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예스어스’ ‘어글리어스마켓’ 등의 온라인 기반 유통 업체도 생겨났다.

편의점 CU는 지난 5월 우리 농가 돕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상품성이 떨어지는 일명 ‘못난이 채소’를 취급하는 ‘싱싱상생’ 브랜드를 선보이기도 했다. 지난 9월부터는 채소뿐 아니라 과일로도 품목을 확대했다.

뷰티 업계도 푸드리퍼브에 동참하고 있다. 상품성이 떨어져 폐기되던 농작물을 원료로 사용한 화장품을 잇달아 선보이고 있다. LG생활건강은 최근 못난이 농작물을 원료로 사용하는 ‘어글리 러블리’ 브랜드를 론칭했다. 라타플랑은 전남 순천만에서 건강하게 자란 무농약 못난이 미나리를 활용한 화장품 7종을 선보이기도 했다.

■패션도 여행도 ‘착한 소비’ 물결

가치소비의 일환으로 동물 학대나 착취가 없는 ‘비건 브랜드’도 조명받고 있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이 수입·판매하는 이탈리아 비건 패딩 브랜드 ‘세이브더덕’의 올 1월~11월 27일까지 온라인 매출은 지난해 동기간 대비 40% 증가했다. 특히 이른 추위가 찾아왔던 지난달에는 전년 대비 48% 이상의 매출이 오르기도 했다. 이 브랜드는 ‘오리를 살린다’라는 브랜드 이름에 걸맞게 동물성 원료를 배제하고, 동물 학대나 착취가 없는 공정을 추구한다.

숙박업계도 가치소비 트렌드를 반영하고 있다. 그랜드 조선 부산은 소외계층의 노인을 지원하는 ‘신이어마켙’과 협업한 겨울 패키지 ‘Warm-hearted Winter’를 내년 2월 29일까지 선보인다.

패키지는 객실뿐 아니라 신이어마켙 소속 시니어들이 직접 쓴 메시지와 그림으로 제작된 신이어마켙의 굿즈 세트도 포함하고 있다. 굿즈 세트는 11명의 시니어가 청춘들에게 전하는 따뜻한 응원의 말과 현실적 조언을 담은 책 ‘일단 살아봐 인생은 내 것이니까’를 비롯해 손 그림으로 24절기의 모습을 담은 ‘2024년 탁상달력’, 친근함이 느껴지는 ‘할매할배 손그림 손글씨 리무버블 스티커 2종’으로 구성돼 있다.

이번 협업에 참여한 신이어마켙은 폐지 수거 노인 또는 빈곤 노인에게 보다 나은 일자리를 지원하는 사회적 기업 ‘아립앤위립’이 운영하는 소셜 브랜드다. 2030세대가 제품을 기획하면, 시니어들이 제품을 제작·포장한다. 2030세대에게는 시니어의 이야기를 전하고, 시니어에는 새로운 일거리를 제공해 세대 간의 이야기가 끊기지 않도록 하는 가치를 지향한다. 신이어마켙의 굿즈와 콘텐츠는 가치 소비를 중시하는 MZ세대로부터도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이번 패키지는 조선호텔앤리조트의 지속 가능한 여행을 위한 ESG 비전 ‘의미 있는 머무름’의 가치를 담아 기획됐다. 상품의 수익금 일부는 어르신들의 경제적 자립을 위한 금액으로 후원된다. 그랜드조선 부산 관계자는 “추워지는 날씨 속 나눔의 온기를 더한 겨울 패키지와 함께 따뜻하고 잊지 못할 겨울 여행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전했다.


서유리 기자 yo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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