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준 씨 피살 인지 후 자료 삭제… 불명확한 근거로 ‘자진 월북’ 강조"

곽진석 기자 kwa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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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원 최종 감사 결과 내용

초기 미적거리는 사이 북이 사살
최초 회의·전통문 발송 등 누락
사건 관계자 20명 재판 진행 중

피살된 공무원이 타던 어업지도선 무궁화 10호에서 지난해 9월 열린 추모 노제. 연합뉴스 피살된 공무원이 타던 어업지도선 무궁화 10호에서 지난해 9월 열린 추모 노제. 연합뉴스

감사원은 2020년 9월 서해를 표류하던 공무원 이대준 씨가 북한군에 의해 목숨을 잃을 때까지 문재인 전 정부가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문 정부가 사건 초기 대응을 하지 않고 미적거리는 사이 북한군은 이 씨를 사살하고 시신을 소각했다. 이후 문 정부가 이 사실을 조직적으로 은폐했다는 게 감사원 설명이다.


7일 감사원이 발표한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감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 2020년 9월 22일 오후 5시 18분, 문 정부 국가안보실은 ‘우리 공무원이 북한 해역에서 북측에 발견됐다’는 군 보고를 받았다. 전날 새벽 서해 소연평도 인근에서 실종됐다가 이날 오후 북한 황해남도 해역에서 발견된 이 씨는 당시 약 38시간 동안 바다를 표류해 생명이 위태로운 상태였다. 북측은 이씨를 구조하지 않고 방치했다. 안보실도 이런 정황을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최초 상황 평가 회의’는 열리지 않았다.

국방부는 이 씨의 신변 안전 보장을 촉구하는 대북 전통문을 즉각 발송하지 않았고, 해경 역시 경찰 등 관계기관에 협조를 요청하지 않았다. 통일부 담당 국장은 오후 6시께 관련 정황을 파악하고도 이를 장·차관에게 보고하지 않았다. 당시 안보 사령탑이었던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과 서주석 전 국가안보실 1차장은 이날 오후 7시 30분이 되기 전에 퇴근한 것으로 확인됐다. 강건작 전 국가위기관리센터장은 오후 7시 30분께 퇴근했다. 그로부터 2시간여가 지난 오후 9시 40분부터 10시 50분 사이. 북한군은 이 씨를 사살하고 소각했다.

안보실은 이튿날인 9월 23일 오전 1시 관계장관회의에 서해 공무원 피살 사실에 대한 보안 유지 지침을 내렸다. 국방부는 이날 오후 1시 30분 이 씨가 생존 상태(실존 상태)인 것처럼 작성한 안내 문자를 기자들에게 발송했다. 나아가 안보실은 이씨의 자진 월북 정황을 언론에 알리라는 지침도 내렸다.

해경은 다음날인 9월 24일 1차 중간 수사 결과 발표에서 “이 씨의 자진 월북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국정원은 9월 27일 이 씨의 자진 월북 여부가 명확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리고도 월북 판단을 기초로 한 안보실의 대응 지침을 방치했다. 명확하지 않은 근거로 문 정부가 이 씨의 ‘자진 월북’ 가능성을 강조한 것이다. 감사원은 “건을 은폐하기 위해 비밀 자료를 삭제하고 부정확한 사실을 근거로 자진 월북 여부를 부당하게 판단·발표했다”고 지적했다.

감사원은 앞서 지난해 10월 중간 결과를 발표하며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 서욱 전 국방부 장관 등 20명을 검찰에 수사 요청해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다.

이번에 조치가 요구된 13명 중 서욱 전 장관, 김홍희 전 해경청장 등 퇴직자 5명에 대해서는 해당 기관이 징계 사유를 인사 기록에 남겨 향후 공직 재취업 시 불이익이 가도록 했다. 현직자는 징계 요구 7명, 주의 요구 1명 등 총 8명이다.


곽진석 기자 kwa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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