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더 나은 돌봄을 위해

송지연 기자 sj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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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둘째 아이 초등학교 입학
돌봄 교실 덕에 ‘경단녀’ 위기 모면
교육청 등 ‘부산형 통합 늘봄’ 추진
맞벌이 부모 입장에선 반가운 일
돌봄 교사 늘어난 업무 지원 필요
편안함 제공할 공간 구성도 중요
장기적으론 유연한 일자리 모색을

지난 23일 부산시교육청과 부산시, 16개 구·군과 지역 대학이 손을 잡고 영유아와 초등학생 돌봄 인프라를 획기적으로 개선한다고 발표했다. 정부가 올해 2학기부터 돌봄과 방과후 프로그램을 결합해 오전 7시부터 오후 8시까지 돌봄을 제공하는 ‘늘봄 학교’ 도입을 선언한 것에 발맞춰 ‘부산형 통합 늘봄’을 표방하고 나선 것이다.

영유아는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 보육 시간을 늘리고, 초등학생 1~3학년 학생 중 돌봄을 원하는 모든 학생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유치원이나 지역 대학 등 지역 연계 돌봄 시설을 확충하고, 양질의 방과후 프로그램을 늘리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돌봄 공백으로 아이 맡길 데를 찾느라 진땀을 흘린 부모라면 돌봄 시스템 강화가 반가울 수밖에 없다. 지난해 초등학교 입학한 아이가 학교 돌봄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할까 봐 몇 날을 노심초사했다. 방과후 수업을 듣고 학원을 여러 군데 다녀도 오후 8시 퇴근 전까지 돌봄 공백을 메울 수 없어 막막했다. 다행스럽게도 학교 돌봄 교실을 이용할 수 있었고, 최악의 경우 퇴사냐 육아냐 갈림길에 서는 것은 피할 수 있었다.

학교 돌봄 프로그램은 만족스러웠다. 오후에 간식을 챙겨주고, 그림 그리기나 체육 등 다양한 활동도 이뤄졌다. 맞벌이 부부의 가장 큰 고비인 방학 때도 오전에 문을 열어 아이를 맡길 수 있었다. 하지만 2학년이 되면 1학년 우선 배정 원칙 때문에 돌봄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을지 모른다는 이야길 듣고 또 불면의 밤이 시작됐다. 운이 좋게 아파트 안에 지자체가 지원하는 지역 돌봄 센터가 생겨서 걱정을 덜었다.

이용자 편의와는 별개로 교육계 내부에서는 학교 돌봄 서비스 확대에 우려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학교 행정 업무가 늘어나고, 과밀 학교는 돌봄 교실 공간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학교 돌봄 교실을 이용하면서 돌봄 전담 교사의 어려움을 직간접적으로 알 수 있었다. 돌봄 교실에 직접 아이를 데리러 간 일이 있었다. 간 김에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었는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돌봄 교사는 학원 차량이나 부모로부터 걸려 오는 전화를 받고, 20명에 달하는 아이들이 수시로 불러 대는 통에 정신이 없어서 황급히 나올 수밖에 없었다. 간식이나 도시락 신청, 아이 스케줄 변동과 결석에 따른 환불 처리 등 돌봄 교사가 꼼꼼하게 챙겨야 하는 업무가 한둘이 아니었다.

돌봄 이용 아이들이 늘어나면 돌봄 교사 업무도 늘어난다. 돌봄 서비스 확대가 내실 있게 정착되기 위해서는 돌봄 인력 확충 등 지원 시스템을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

여기에 더해 이번 기회에 돌봄 공간에 대한 고민이 함께 이뤄졌으면 한다. 돌봄 전담 교실은 일반 교실 모습과 큰 차이가 없다. 수업 시간에 4~5시간 의자 생활을 한 아이들은 대개 돌봄 교실에서도 의자에 앉아 시간을 보낸다. 집처럼 바닥이나 소파에서 뒹굴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돌봄이 ‘보살핀다’라는 의미를 갖는다는 것을 감안하면, 아이들 심리에 영향을 끼치는 공간의 구성은 돌봄의 중요한 요소이다.

수년 전 핀란드 헬싱키의 한 초등학교를 방문한 적이 있다. 학교에 들어서자마자 공간의 아늑함이 한국의 학교와 확연하게 달랐던 기억이 또렷하다. 긴 복도에 교실이 일렬로 늘어선 천편일률적인 한국 학교와 달리, 교실들이 거실에 딸린 방처럼 배치되어 있었다. 거실과 같은 공유 공간 곳곳에는 소파가 놓여있었고 바닥에는 아이들이 편하게 앉거나 누울 수 있는 패브릭 소재 바닥재가 깔려 있었다. 교실 사물함 위에는 아이들이 집에서 가져온 인형이나 아끼는 물건이 진열되어 있었고, 복도에는 좁은 공간을 좋아하는 저학년을 위해 인디언 텐트가 여러 개 세워져 있었다. OECD 국가 중 학업성취도가 최상위권인 핀란드 교육의 저력은 집처럼 편안하게 조성된 학교 공간에서 시작된 것이 아닐까 싶었다.

학교 전체를 아늑한 공간으로 만들기 어렵다면 돌봄 교실만이라도 아이들이 편안함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들 수는 없을까? 오랫동안 돌봄 교실에 머물 아이들 입장에서 공간이 꾸며지면 좋겠다.

돌봄 시스템으로 출생률을 높이려는 사회적 노력은 장기적 관점에서는 일자리 고민과 병행되어야 한다. 아이를 일정 시점까지 키우는 데에는 무엇보다 시간이 많이 든다. 그 시간을 일과 병행할 수 있는 일자리를 기업과 정부가 함께 모색해야 한다. 요즘 부모들은 예전보다 아이와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한다. 육아 중 돌발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근무 환경과 급여 불이익이 발생하지 않는 일자리가 많아야 아이 키우는 환경이 좋아질 것이다.

송지연 기획취재부장 sjy@busan.com


송지연 기자 sj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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