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아름다운 도시 부산에 살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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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우 부경대 사학과 교수

산과 강, 바다가 어우러진 부산
살면 살수록 더욱 매력적인 곳
곳곳에 볼거리·먹거리도 풍부
하지만 외지인 불평 들릴 때도
특히 거친 운전 매너 악명 여전
피서철, 부산의 참맛 알게 해야

부산은 분명 아름답고 살기 좋은 도시다. 올해로 30년째 부산에 살고 있는 필자도 산과 강, 바다가 절묘하게 어울린 부산에 매료됐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해에 부모님을 따라 시골에서 대구로 옮겨 가서 살았는데, 한여름에는 40도까지 오르기도 했다. 겨울의 추위도 혹독했다. 양말을 두 켤레나 신고, 말린 고추까지 신발 속에 넣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대학 진학을 위해 간 서울의 추위는 차원이 달랐다. 영하 15도까지 내려가기도 하고, 눈이 많이 내리는 날에는 길이 온통 빙판길로 변하기도 했다.


유학 시절을 보낸 일본의 교토는 공교롭게도 대구와 같은 분지인 데다 남쪽에서 북쪽으로 갈수록 지대가 높아지는 형태여서 여름철에 태양열을 더 높은 각도로 받는 곳이다. 게다가 습도도 대구보다 훨씬 높다. 그래서 일본의 집들은 대부분 난방보다는 여름철 더위를 이겨내기 위한 구조로 설계된다. 문이 많아서 문을 열거나 들어 올리면 거의 기둥만 남아 통풍이 잘 되도록 한다. 방바닥에는 골풀로 만든 자리인 다다미라는 걸 깔아서 여름에 시원하게 지낼 수 있다. 뾰족한 난방 수단이 없으니, 겨울에는 추울 수밖에 없다. 4월에도 교토에서는 전기담요가 필수품이다. 그렇게 5년을 보내고 돌아온 곳이 부산이다.

천국이었다. 여름에는 30도를 잘 넘지 않고 겨울엔 영하로 내려가지 않았다. 용호동 산 중턱의 아파트에서 남쪽 창문을 열면 바로 산이고 몇 걸음 걸으면 약수터가 있었다. 거기서 조금만 올라가면 장자산 꼭대기인데 대마도도 보였다. 그래서 대마도를 연구하기로 했다.

더운 여름에는 바닷가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광안리, 해운대뿐만이 아니다. 당시엔 이기대 해안에도 섭자리처럼 물놀이를 즐길 수 있는 곳이 있었다. 광안리 바닷가에서는 모랫바닥에서 바지락도 잡혀서 해녀가 물질하는 옆에서 발가락으로 조개를 집어 올렸다. 해안 바위에 붙어서 홍합을 떼기도 하고 돌을 들춰가며 게를 잡기도 했다. 길 잃은 한치를 잡아서 바로 횟집에 들고 간 적도 있다. 지금도 부경대학교 쪽 바닷가 다리 위에서 낚싯대를 드리우고 세월을 낚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부산은 분명 어로와 채집이라는 인간의 오랜 본능을 자극하는 곳이다. 그래서 바다를 연구하기도 했다. 설령 내 손으로 잡을 수 없더라도 어디나 즐비한 횟집을 찾으면 된다. 이제 사라질 운명에 처하긴 했지만, 용호동어촌계를 중심으로 한 횟집에 앉아서 곰장어와 붕장어를 동시에 즐길 수 있다. 서울이나 대구에서 부산을 방문하는 친구들에게 필자가 즐겨 찾는 횟집에 가보라고 한 뒤 사장님께 전화 한 통만 넣어두면, 다음날 입에 침이 마르도록 맛있게 잘 먹었다는 인사말을 듣곤 했다.

부산의 신선하고 정성이 가득한 회를 먹다가 서울에 가서 어쩌다 회를 먹으면 ‘이런 걸 회라고 먹고 있구나’, 서울 사람들이 오히려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부산이란 이름대로 곳곳에 산이라,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산에 오를 수 있다. 서울이나 대구나 교토도 산에 둘러싸여 있기는 하지만, 도심에서 산까지 가기란 쉽지 않다. 마음먹고 등산해야 오를 수 있는 산이다. 부산은 그 반대로 여러 산 사이에 사람들이 살고 있기 때문에 산과 친근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렇게 아름답고 살기 좋은 부산에 대해 불평을 토로하는 사람도 없지 않다. 특히 서울이나 경기도에서 직장에 다니다가 직장이 옮겨오면서 부산에 살게 된 사람들이다. 침을 튀기면서 부산을 헐뜯는 소리를 듣노라면 적잖이 마음이 불편하다. 부산에 살 요량이면 부산을 욕하지 말라고 쏘아붙이기는 했지만, 짚이는 구석이 없지는 않았다.

우선 느낄 수 있는 게 운전 매너다. 부산 차량은 방향지시등이 옵션이라고 농담할 정도로 운전자들이 방향지시등을 잘 사용하지 않는다. 특히 큰길에서 작은 길로 들어올 때 방향지시등을 켜는 사람은 보기 드물다. 그래서 큰길로 나가려는 사람들이 제대로 판단하기 어렵다. 차선을 바꿀 때도 방향지시등을 켜지 않는 경우가 많고, 이쪽에서 방향지시등을 켜면 양보 운전을 하는 게 아니라 더 빨리 달려오는 경우도 있다. 그런저런 이유로 인해 부산에 와서 한동안 운전대를 잡지 않았다는 사람도 있었다.

이런 농담도 있다. 서울 전철에서 왁자지껄한 대화를 나누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 누군가 좀 조용히 하라고 하자 “이 기 다 니 끼가”라는 답이 돌아왔다고 한다. 그러자 “봐봐, 일본 사람들이잖아”라고 했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이제 본격적인 피서철이고 많은 사람이 부산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려고 찾아올 것이다. 부산 사람들끼리는 별일 아닌 일도, 외지인들은 놀라고 당황할 수 있다. 아름다운 도시 부산에는 아름다운 부산 사람이 살고 있음을 느끼게 해 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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