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품격 제로’ 의원들의 전성시대

전창훈 기자 jch@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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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청래 효과’ 실감한 21일 국회 법사위 청문회
막말·편법 대출에도 반성 없는 양문석의 득세
중도층과 유리된 ‘이재명당’ 민주당의 현실
정파 떠나 국민 대표로 최소한의 품격 갖춰야

22대 국회 원 구성 협상의 핵심인 법제사법위원장 자리를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의원이 맡는다는 소식에 싸한 기분이 든 건 필자만은 아닐 테다. 모든 법안의 길목인 법사위가 전쟁터가 되면 국회는 연중 피 튀는 전장이 될 수밖에 없다. 정 의원이 누구인가. 2004년 '탄핵 돌풍'을 타고 17대 국회에 입성한 정 의원은 상대의 자존심을 무참히 짓밟는 언어 공격에서 독보적인 존재감을 보였다. 당내에서도 "수틀리면 누구든 공격하는 사람"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그러나 잦은 설화는 결국 2016년 공천 '컷오프'를 불렀고, 각고 끝에 21대 총선에서 생환했지만 이번엔 불교계를 향해 "봉이 김선달이냐"며 조롱했다가 당내에서도 고립무원의 위기를 맞기도 했다. 이 때만 해도 정 의원이 법사위원장이 되는 상상을 하는 이는 민주당 내에서도 드물었다.

정 의원이 찾은 돌파구는 이재명이었다. 그는 2021년 페이스북에 이 대표의 자서전을 읽은 뒤 "이재명은 대통령이 될 실력과 자격이 있다"며 '친명(친이재명)' 선언을 했고, '이재명당'이 도래하자 당 주류로 올라서 강성 지지층의 총애를 한 몸에 받고 있다.

지난 21일 '채 상병 특검법' 입법청문회가 열린 국회 법사위 회의장은 우려했던 '정청래 효과'를 실감케 했다. 위원장이 앞장서 인신공격성 조롱을 퍼붓자 민주당 법사위원들도 거리낌이 없었다. 초선인 박균택 의원조차 증인을 향해 "인간도 아니다"는 극언을 할 정도였다. 그럼에도 정 의원은 그 다음 회의에서 국민의힘 유상범 의원과 '공부 논쟁'을 벌였다. 부끄러웠던 유 의원은 이후 반성하며 "정 의원과 풀겠다"고 했지만, 정 의원은 오히려 "형사고발을 검토하고 있다"며 더 기세등등하게 나왔다. '닥공(닥치고 공격)'이 주특기인 정 의원에게 반성과 사과는 자기 부정과 같은 건가.

22대 국회에서는 정 의원에 이어 같은 당 양문석 의원이 막말계의 '신성'으로 떠올랐다. 수틀리면 피아도 없는 닥공 본능이 정 의원과 흡사하다. 한때 자신이 지지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한다고 "'노무현 매국질 기념관'을 짓는 데 동의한다"고 공격했다. 2019년 고향인 경남 통영·고성에서 정치를 시작했지만, 연이은 세 번의 낙선 끝에 그가 찾은 돌파구 역시 이재명이었다. 지난 총선을 앞두고 느닷없이 "수박(비이재명계에 대한 멸칭)을 깨뜨려 버리겠다"며 연고도 없는 친문(친문재인) 전해철 의원 지역구인 경기도 안산 출마를 선언한다. 막판 '편법 대출' 문제로 위기를 맞았지만, '친명불패' 공천에 후퇴는 없었다.

당시 박빙 승부를 벌이던 부산 민주당에서 "'양문석 악재'가 보수 역결집을 도와 우리 후보에 치명타가 됐다"는 말이 나왔지만, 양 의원은 별로 개의치 않을 것 같다. 오히려 자신의 문제를 지적한 언론을 겨냥해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을 골자로 한 언론중재법을 발의했고, 이재명 대표의 '언론 애완견' 발언에는 한 술 더 떠 "애완견으로 품격을 높여줘도 '기레기'들은 발작 증세를 일으킨다"며 막말을 쏟아냈다. 양 의원이 적대시하는 어떤 언론도 양 의원을 그런 저급한 발언으로 비판하진 않는다. 국회의원으로서 말의 품격에 대한 어떤 책임감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아 개탄스럽다.

두 사람의 승승장구는 이재명 시대의 도래와 연관 짓지 않을 수 없다. 숱한 윤리적 논란과 역대 최악의 '사법 리스크', 도무지 제 1야당 대표에 어울리지 않는 이력에도 상식을 깨는 정치 기술과 물불 안 가리는 팬덤, '설마설마' 하는 내부의 안일함을 비집고 들어가 70년 역사의 민주당을 사실상 1인 지배 정당으로 탈바꿈시켰다. "지금 민주당은 '신성불가침' 이 대표의 지배 아래 윤석열·김건희, 국민의힘, 정치 검찰, '기레기'만 때리면 내 온갖 허물이 사해지는 친명의 '소도'가 됐다"는 한 정치권 인사의 말이 과장되게 들리지 않는다.

국민의힘에선 아직 정, 양 의원에 필적할 인재(?)는 눈에 띄지 않는다. 다만 위험 인자들은 도처에 있다. 1일 열린 국회 운영위에서 여당 일부 의원들은 법사위 때 일을 되갚으려는 듯 작심하고 민주당을 자극했다. 막말엔 막말로 대응하지 않으면 뭔가 밀리는 듯한 기분이 들겠지만, 그런 치킨게임에서 탈피하지 못하는 이상 우리 정치에 대한 환멸을 피할 길이 없다.

윤석열 정부가 죽을 쑤는 와중에도 최근 민주당 지지율은 국민의힘에 밀리고 있다. '품격 제로' 정치인들이 득세하는 한 민주당이든, 국민의힘이든 중도층으로 지지층을 넓히긴 힘들 것이다. 다 떠나서 협치는 언감생심 바랄 수 없을 정도로 우리 정치가 망가졌지만, 정파나 좌우를 막론하고 최소한의 품격을 갖춘 국민의 대표를 보고 싶은 게 그리 과한 기대인가?

전창훈 서울정치부장 jch@busan.com


전창훈 기자 jch@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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