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종교가 아니기에 맹신은 위험하다”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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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교육의 미래 2026 / 이상철 외 9명

다행복학교 학생 자치 성숙
막대한 재정 IB 교육엔 의문
“부산교육 미래 함께 생각”

부산시교육청 주최로 IB 교육 학부모 공청회가 열리고 있다. 부산시교육청 제공 부산시교육청 주최로 IB 교육 학부모 공청회가 열리고 있다. 부산시교육청 제공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가 언제인데 지금도 가끔 수학 시험을 보는 꿈을 꾼다. 가위에 눌렸다 깨면 이제는 시험을 보지 않아도 되어서 다행이라며 안도의 한숨을 쉰다. ‘수포자’라는 말도 없던 시절이었지만 수학 과목은 늘 두려웠다. <부산 교육의 미래 2026>에서도 ‘수포자 문제 해결 방안-AI는 수포자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라는 소제목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이 책은 미국 수학 교사 모임이 수학 공부에 필요한 소질로 결론 내린 네 가지 조건을 소개한다. 신장에 신발을 바르게 넣을 수 있는가(일대일 대응), 요리책대로 간단한 요리를 할 수 있는가(측정과 절차), 사전에서 단어를 찾을 수 있는가(대소 관계와 순서), 간단한 약도를 그릴 수 있는가(추상화)이다. ‘수학 머리’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누구나 수학을 잘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미국의 수학자 폴 록하트는 <수포자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썼다. 그는 거기서 “10년간이나 수학을 잘한다는 말을 들어온 학생이 대학원 과정에 이르러서야 수학적 재능이 없음을 깨닫고 슬픔에 잠긴다”라면서 탄식했다. 수학은 ‘이미 풀이 방법을 알고 있는 문제를 빠르게 푸는 것’이라는 인식은 가장 큰 오해다. 규칙을 발견하고, 이것을 수식으로 표현하고, 현실에 적용을 잘해야 정말로 수학을 잘하는 학생이라고 결론 내린다. 학창 시절에 수학에 대한 인식만 바르게 심어 줬어도 평생 수포자로 살지는 않았을 텐데….

그렇다면 AI는 수포자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AI는 문제 풀이에 실패하면 원인 분석 없이 더 낮은 수준의 문제를 계속 풀게 만든다. 참고서 푸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는 내용을 컴퓨터 화면으로 푼다고 뭐가 달라질까. AI 수학 프로그램을 사용한 교사들은 대부분 효과가 미미하다고 응답한다. 수학 과목의 평가도 토익이나 토플처럼 언제든지 재응시해 원하는 점수를 받으면 수학 학습 능력을 인정하는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에 백분 공감하게 된다.

이 책에는 <나는 대한민국의 교사다>를 쓴 조벽 교수의 발언이 인용되어 있다. “지금 한국은 외국에서 실시해 오던 제도를 무조건 신봉하는 모양입니다. 저는 이 세상에서 맹목적으로 신봉해야 하는 것은 종교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교육이 종교가 아니라면 맹목적 신봉은 지극히 위험한 일입니다.” 20년 전에 쓴 책에 나온 내용인데도 마치 지금 미래형 교육과정으로 주목받으며 인기가 치솟고 있는 IB(국제 바칼로레아, International Baccalaureate) 교육을 두고 하는 이야기 같다.

IB 교육은 국제적으로 공인된 표준화된 교육과정이라 물론 장점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IBO의 인정을 받기 위한 비용이 적지 않다. 막대한 재정적 부담으로 지역청, 학교 간 경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교육 예산이 IB 학교 운영에 편중되어 형평성 문제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윤수 부산시교육감은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2023년부터 IB를 본격 도입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유행을 따르는 것도 좋지만 한국의 공교육을 꼭 외국기관에 목을 매야 하는지 모르겠다.

부산에서 진행 중인 교육 정책을 깊이 있게 다룬 책이다. 시중에는 교육을 주제로 한 책이 차고 넘치지만 이처럼 지역 교육을 주제로 한 책은 보기 드물다. 부산형 혁신학교인 다행복학교의 현주소도 반가웠다. 부경고 학생회는 2023년 <부경고백서>라는 100페이지 넘는 책자를 발간할 만큼 활동이 풍성했다. 만덕고는 매점을 사회적협동조합으로 만들었다. 학생들이 판매할 메뉴를 정하는데 참여해 싸고 좋은 상품을 공급한다. 충렬고 학생회는 지난해 여름방학 때 6개 고교 연합 학교폭력 예방 축제를 열었다. 어느새 다행복학교의 학생 자치가 성숙하게 무르익은 것이다.

이 책은 진보 교육감 8년의 여정을 돌아보고, 보수교육감이 들어선 이후 부산교육의 현황을 짚는다. 부산의 지역 간 교육격차 실태와 개선 방안, 부산의 학령인구 감소와 학교 변화 등 모두 민감한 주제들이다. 이런 고찰을 바탕으로 부산교육의 미래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자고 이야기한다. 교육은 일반 시민의 삶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이상철 외 9명/살림터/384쪽/2만 2000원.


<부산 교육의 미래 2026> 표지. <부산 교육의 미래 2026> 표지.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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