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자산거래소 파산 시 ‘연대 책임’에 은행들 몸 사린다

이정훈 기자 leejnghu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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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산 시 고객 예치금 반환 의무
은행권, 실명계좌 거리 두기
폐업 코인마켓거래소 8곳
“업비트·빗썸 체제만 강화 꼴”

가상자산거래소가 파산하면 제휴 은행이 고객의 예치금을 돌려주게 되자, 은행권에서는 완전 자본잠식에 빠진 코인마켓거래소와 거리 두기에 나서겠다는 분위기다. 가상자산 업계는 업비트와 빗썸 등 원화마켓거래소의 체제만 더욱 강화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진은 가상자산거래소 업비트(왼쪽) 전경과 빗썸 고객센터 내부 모습. 각 사 제공 가상자산거래소가 파산하면 제휴 은행이 고객의 예치금을 돌려주게 되자, 은행권에서는 완전 자본잠식에 빠진 코인마켓거래소와 거리 두기에 나서겠다는 분위기다. 가상자산 업계는 업비트와 빗썸 등 원화마켓거래소의 체제만 더욱 강화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진은 가상자산거래소 업비트(왼쪽) 전경과 빗썸 고객센터 내부 모습. 각 사 제공

앞으로 가상자산거래소가 파산하면 제휴 은행이 고객의 예치금을 돌려주게 된다. 다만 은행에도 부담이 가중돼, 은행권이 가상자산거래소와 거리 두기에 나설 것이란 분위기가 감지된다. 결국 금융당국의 투자자 보호라는 취지가 거래소 선택의 폭을 좁혔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8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오는 19일 시행 예정인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에 따라 가상자산거래소는 이용자의 예치금을 공신력 있는 은행에 보관하고, 은행은 안전자산을 대상으로 운용해야 한다. 가상자산거래소가 파산하거나 사업자 신고가 말소되면, 은행은 지급 시기·장소 등을 일간신문과 홈페이지에 공고하고 이용자에게 예치금을 지급해야 한다.

하지만 업계는 은행에도 묻는 연대 책임으로 인해 가상자산거래소와의 실명계좌 제휴가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가상자산거래소와 실명계좌 제휴를 맺은 은행은 신한은행(코빗), NH농협은행(빗썸), 전북은행(고팍스), 케이뱅크(업비트), 카카오뱅크(코인원) 등 5곳이다. 이들을 제외하고 지난 2년간 실명계좌 제휴를 맺은 곳은 없었다.

실명계좌 제휴를 맺지 않은 1금융권 관계자는 “단순 예치금 보관에 그치는 게 아닌 예치금 현황을 금융당국에 상시 보고해야 하며, 관련 부서 신설과 인력 충원 등 은행의 업무가 대폭 늘어난다”며 “실명계좌 제휴를 맺는 이유가 수익을 공동 창출하기 위함인데, 대부분 코인마켓거래소의 극심한 적자 리스크도 주저하는 요인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금융위원회 산하 금융정보분석원(FIU)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가상자산사업자(VASP)로 등록된 코인마켓거래소 21곳 중 포블게이트와 비트레이드 2곳을 제외하고 모든 거래소가 ‘완전 자본잠식’에 빠졌다. 완전 자본잠식은 적자가 누적돼 납입 자본금까지 모두 바닥을 보인 상태를 의미한다. 이들 중 거래대금이 ‘제로’ 수준인 코인마켓거래소는 10곳에 근접했다.

가상자산거래소는 ‘원화마켓’과 ‘코인마켓’으로 구분된다. 투자자가 원화로 가상자산을 매수·매도하기 위해선 원화마켓을 이용해야 하는데, 원화마켓은 제도권 은행으로부터 실명계좌를 취득해야 한다. 이는 가상자산업권법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실명 확인을 통해 금융 사고를 예방하기 위함이다. 코인마켓은 원화 거래가 불가능하고, 투자자 간 코인으로만 거래할 수 있다.

사실상 은행이 코인마켓거래소의 운명을 쥐고 있는 셈인데, 금융당국의 눈치 보기에 코인마켓거래소와 거리를 두고 있다는 후문이다. 일례로 코인마켓거래소 한빗코는 지난해 6월 광주은행과 실명계좌 계약을 체결한 뒤 원화마켓거래소로 전환을 시도했지만, 금융위가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 위반 이력 등을 이유로 원화마켓 전환을 반대했다.

지닥도 지난해 실명계좌 발급을 위해 부산은행, 수협은행등과 논의했으나 모두 불발됐다. 결국 금융당국의 허가로 은행과 계약을 맺어야 하지만, 원화 거래가 안 되자 수년간 유지비용만 들고 공식적으로 서비스 종료한 코인마켓거래소는 8곳에 달한다.

코인마켓거래소의 전망은 더욱 어둡다. 금융당국은 지난 2021년 9월 가상자산거래소 사업자를 대상으로 3년 기한의 라이선스를 부여했다. 해당 라이선스 갱신이 올해 9월 중 이뤄지는데, 가상자산사업자 신청 시 이달 19일부터 시행되는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이 포함된다.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에는 해킹·전산장애 등 사고 피해에 대한 보상을 위한 가상자산사업자의 보험·공제 가입이나 준비금 적립을 의무화했다. 원화마켓거래소는 30억 원 이상, 코인마켓거래소는 5억 원 이상의 준비금이 필요하다. 하지만 대부분 완전 자본잠식에 빠진 코인마켓거래소가 준비금을 감당할 수 있는 업체는 극히 일부인 것으로 알려졌다.

코인마켓거래소 관계자는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이 시행되면 당국의 관리·감독 강화로 은행은 더욱 소극적인 행보를 보일 것”이라며 “은행이 실명계좌를 내주더라도 금융당국의 허들을 못 넘고 무산될 가능성이 크다”고 비판했다.

이어 “결국 5대 원화마켓 중 업비트와 빗썸의 체제만 더욱 강화될 것”이라며 “투자자 보호라는 취지가 투자자들의 거래소 선택의 폭을 좁히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가상자산 통계 분석업체 코인게코에 따르면 오후 2시 30분 기준 거래소별 24시간 거래대금은 △업비트 8억 7605만 달러(한화 약 1조 2100억 원) △빗썸 2억 4993만 달러(5665억 원) △코인원 2727만 달러(375억 원) △코빗 2576만 달러(355억 원) △고팍스 307만 달러(165억 원)다. 이를 점유율로 계산하면 업비트(64%)와 빗썸(30%)이 가상자산 시장의 95%를 차지한다.


이정훈 기자 leejnghu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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