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피리 부는 사나이

강윤경 논설위원 kyk9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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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작은 마을 하멜른에 쥐 떼가 창궐해 고양이를 위협할 정도여서 주민들이 골머리를 앓았다. 하멜른 시장은 막대한 상금을 내걸었고 한 남자가 나타나 피리 소리로 쥐들을 유인한 후 강물에 뛰어들어 죽게 했다. 하지만 시장과 마을 사람들은 상금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그 사내를 쫓아냈다. 화가 난 사내는 다시 피리를 불었고 이를 따라간 아이들은 언덕에 올라 하늘 문을 통해 사라졌다. 마을 사람들은 뒤늦게 아이들을 찾아 나섰지만 결국 아무도 돌아오지 못했다.

그림 형제의 〈독일 설화집〉(1816년)에 전해지는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는 이후 하멜른 시청 옛 공문서에 ‘1284년 6월 26일 130명의 아이가 갑자기 사라졌다’라는 기록이 발견되면서 사람들 사이에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일 가능성을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 마을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에서도 ‘피리 부는 남자와 아이들’을 묘사한 그림이 발견돼 실화 가능성을 뒷받침했다. 이 때문에 페스트로 인한 집단 사망설, 십자군 원정 참여설, 동유럽 집단 이주설, 납치설 등 숱한 해석이 등장하고 있지만 정확한 진실은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유럽의 극우 돌풍을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에 비유하며 이 전래동화를 소환했다. 교황은 7일(현지시간) 이탈리아 트리에스테에서 “지금 세계의 민주주의는 건강하지 않다는 것이 분명하다”며 이념적 유혹과 포퓰리스트에 대해 경고했다. 교황은 “이념은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로 당신을 유혹하고 스스로를 부인하도록 이끈다”고 말했다. 이념의 찌꺼기를 피하고 당파주의에서 벗어나 쉬운 해결책에 속는 대신 공공선에 열정을 쏟자고도 했다. 국가를 특정하지 않았지만 마침 이날이 프랑스 총선 결선투표일이어서 극우 정당 국민연합(RN) 돌풍을 겨냥한 것이라는 해석을 낳았다.

교황의 연설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약진을 예고했던 RN은 결선투표 결과 3위로 밀려났다. 좌파연합이 전체 하원 577석 중 182석을 얻어 1당이 됐고 마크롱 대통령의 범여권이 168석으로 2위에 올랐는데 RN은 143석에 그쳐 3위에 머물렀다. 드골 때 만든 결선투표 제도가 극우 집권을 막았다는 분석도 나왔다. 그러나 청년층을 중심으로 반이민주의 바람을 타고 유럽의 극우 돌풍은 여전히 거세다. 먹고사니즘(먹고 사는 일을 최우선으로 하는 태도)의 기세 속에 언제까지 공공선에 대한 열정이 유지될 수 있을지 걱정이다.


강윤경 논설위원 kyk9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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