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단 급발진 의심 사고… 제조사에 입증 책임 물을 수 있을까

배동진 기자 djbae@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서울시청 사고 계기로 재조명
인정 사례 없지만 소송 잇따라
'페달 블랙박스' 대안으로 거론
페달 오조작 방지 장치도 확대

2022년 12월 이도현(사망 당시 12세) 군이 숨진 차량 급발진 의심 사고와 관련해 지난 5월 27일 사고 차량과 같은 2018년식 KGM ‘티볼리 에어’ 차량의 ‘자동 긴급 제동장치(AEB)’ 기능 재연시험 모습. 연합뉴스 2022년 12월 이도현(사망 당시 12세) 군이 숨진 차량 급발진 의심 사고와 관련해 지난 5월 27일 사고 차량과 같은 2018년식 KGM ‘티볼리 에어’ 차량의 ‘자동 긴급 제동장치(AEB)’ 기능 재연시험 모습. 연합뉴스

최근 서울시청 앞 대규모 사상 사고 등 운전자가 급발진을 주장하는 교통사고가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입증책임 관련 법안 개정과 급발진 방지를 위한 각종 장치 장착 등 일대 변화가 이뤄지고 있다. 급발진 의심 사고 발생 시 제조사가 차량 결함이 없다는 것을 입증하는 내용의 관련 법 개정이 국회에서 진행되고 있다.

또한 정부 차원에서 급발진을 규명할 수 있는 장치를 추가하는 법안이 입법예고 돼 있고, 자동차 페달 블랙박스 장착을 활성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자동차 제조사들도 가속페달 오조작을 막는 ‘페달 오조작 방지 장치’ 장착을 확대하고 있다.

9일 더불어민주당 허영 의원실은 지난 21대 국회에서 발의된 ‘도현이법’ 법안들을 바탕으로 ‘제조물 책임법 일부 법률 개정안’을 다시 발의할 예정이라 밝혔다.

도현이법은 차량 급발진 의심 사고가 발생할 경우 제조사가 차량 결함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게 골자다. 지난 국회에서 허 의원을 비롯해 여야 의원 4명은 각자 유사한 내용의 개정안을 5건 발의했다. 하지만 국회 임기가 끝날 때까지 제대로 심사되지 못하면서 자동 폐기됐다.

2년 전 차량 급발진 의심 사고로 숨진 고 이도현(사망 당시 12세) 군의 아버지는 도현이법 제정을 촉구하고 나섰다. 그는 지난달 14일 국회 국민동의 청원 게시판에 ‘급발진 의심 사고 발생 시 입증책임 전환을 위한 제조물책임법 개정에 관한 청원’을 올렸다. 이 청원은 9일 현재 8만 명 넘게 동의를 얻은 상태다.

국내에서 급발진을 인정한 사례는 없지만 관련 소송은 잇따르고 있다. 최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윤종군(더불어민주당 경기 안성시) 의원이 한국교통안전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7년부터 접수된 급발진 신고 236건 중 실제 인정된 사례는 단 한 건도 없다.

2013년 국토교통부는 재현실험을 했으나 “현재 기술 수준으로는 급발진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입장을 발표했다. 법무법인 세종 이광범(전 자동차안전연구원 부원장) 고문은 “현재 국내의 경우 강릉 티볼리 사건을 포함해 부산 싼타페 사건, 충남 보령 BMW 사건 등이 대법원에 계류 중이며 민사소송에서 운전자의 과실이 보이지 않는다는 의견이지만 그렇다고 급발진을 인정하는 것은 아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지난달 도현 군의 아버지 이상훈 씨가 춘천지방법원 강릉지원 앞에서 ‘도현이법’(제조물 책임법 일부법률개정안) 제정을 위한 국민동의 청원 참여를 촉구하는 모습. 연합뉴스 지난달 도현 군의 아버지 이상훈 씨가 춘천지방법원 강릉지원 앞에서 ‘도현이법’(제조물 책임법 일부법률개정안) 제정을 위한 국민동의 청원 참여를 촉구하는 모습. 연합뉴스

지난 1일 서울시청역 돌진 사고 가해자도 9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사고 직후 경찰에 “차가 급발진을 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져 향후 소송이 예고되고 있다.

미국에선 2013년 토요타 급발진 의심 사고 발생 시 소프트웨어 컨설팅업체 바그룹의 마이클 바 최고기술책임자(CTO)는 재판에서 “수천 시간 실험 결과 소프트웨어 결함으로 급발진이 발생한다”고 증언했다. 토요타는 미국 법무부와 1조 2828억 원의 벌금을 내는 것으로 합의했다. 당시 마이클 바 씨는 “급발진이 발생하면 EDR(사고기록장치)에 브레이크 정보가 잘못 기록된다”고 했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브레이크의 경우 급발진 시 정보가 잘못 기록될 수 있는데 국내 법원은 이를 100% 받아들이고 원고 패소 판결을 내린다”고 지적하고 있다.

자동차 정비 분야 명장 1호인 박병일 카123텍 대표는 “최첨단화되고 있는 자동차의 결함 원인을 일반소비자가 원인분석하고 증명하기는 불가능하다”면서 “대중적인 안전한 차가 되기 위해서는 제조사가 입증책임을 부담하는 방향으로 제조물책임법도 바뀌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운전자가 급발진임을 입증하려면 페달 블랙박스가 장착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국토부는 자동차 제조사에 페달 블랙박스 장착을 권고했다. 의무화를 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정부는 FTA(자유무역협정) 등 국제통상 마찰을 감안한 조치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에 국토부는 급발진 원인을 밝혀내기 위한 대안으로 브레이크 마스터실린더 제동압력값을 현재의 ‘온·오프’가 아닌 ‘퍼센트(%)’로 바꾸는 내용 등을 포함한 ‘사고기록장치(EDR)’ 기록항목을 확대하는 법안을 입법예고 했다. 이광범 고문은 “페달 블랙박스 의무화가 안 된다면 마스터실린더 제동 압력 값을 %로 하는 것으로도 브레이크 페달을 얼마나 밟았는지 수치가 나오기 때문에 급발진 논란이 다소간 해소될 수 있다”고 했다.

또한 급발진 의심 사고의 경우 노령 운전자에게서 주로 나타나고 있는데 일본의 경우 전방에 장애물이 있는 상황에서 운전자가 실수로 가속페달을 밟았을 때 브레이크를 자동으로 작동시키는 페달 오조작 방지 장치를 장착 중이다. 이 장치는 다이하츠의 ‘스마트2 보조시스템’으로 시작됐고 현재 토요타 ‘스마트 페달시스템’, 닛산 ‘악셀페달 오작동 방지시스템’ 등으로 확대되고 있다. 국내에선 최근 출시된 현대차 ‘캐스퍼 전기차’에 페달 오조작 안전 보조장치가 장착됐다.

한라대 최영석(미래모빌리티공학과) 교수는 “페달 블랙박스는 운전자가 돈을 내고 달아야 하고 운전자 잘못일 경우 제출 안 할 수도 있지만 페달 오조작 방지 장치는 국제 규격화할 수 있고 사고 방지에도 효과적일 수 있다”고 밝혔다.


배동진 기자 djbae@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