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만에 돌아 온 ‘나연출’, 의미·재미 다 잡았다

탁경륜 기자 tak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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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12회 맞은 ‘나는 연출이다’
13인 연출가, 13색 매력 뽐내
매진으로 인기 입증, 성장 기대

제12회 나는 연출이다 공연 장면. 연극제작소 청춘나비 제공 제12회 나는 연출이다 공연 장면. 연극제작소 청춘나비 제공
제12회 나는 연출이다 공연 장면. 연극제작소 청춘나비 제공 제12회 나는 연출이다 공연 장면. 연극제작소 청춘나비 제공

2021년 이후 3년 만에 다시 돌아온 ‘나는 연출이다’가 축제의 성장 가능성을 보여주며 인기를 재입증했다. 각지에서 모인 13인의 연출가들은 빛나는 상상력으로 무대를 꽉꽉 채워 13색의 매력을 뽐냈다.

지난 13일 오후 부산 남구 용천지랄 소극장에서는 제12회 ‘나는 연출이다’ 행사가 열렸다. 이날 행사에서는 13명의 연출가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을 소재로 각자 10분간의 무대를 선보였다. 부산, 대구, 일본 등 각지에서 모인 연출가들은 가로 2m, 세로 2m의 작은 무대를 개성으로 가득 채웠다.

첫 번째 공연을 선보인 극예술실험집단 ‘초’ 김동규 연출은 작은 무대에 10명의 배우를 세웠다. 배우들은 등장인물이 됐다가 배경이 되기도 하면서 무대의 공백을 메웠다. 주인공들이 다른 등장인물의 등을 밟거나 목말을 타는 방식으로 움직이는 등 잘 짜인 한 편의 무용 공연 같은 느낌을 선사했다. 김 연출은 “로미오와 줄리엣의 아슬아슬한 밀회를 움직임으로 표현했다”며 “많은 인원을 동원해 최대한 바글바글하면서 우거진 느낌을 만들고 싶었다”고 연출 취지를 밝혔다.

극단 ‘드렁큰씨어터’ 윤준기 연출은 원작을 활용한 ‘스낵 컬처 콘텐츠’를 선보였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이야기를 현대적으로 변형하고 축약해 전달했다. 이야기의 흐름을 잘 살리면서도 ‘한문철’이나 ‘마라탕후루’ 등의 소재를 작품 속에 집어넣어 재치 있는 무대를 보여줬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서사를 전달하는 것 대신 캐릭터의 상황이나 심리에 집중한 작품들도 눈에 띄었다. 극단 ‘살도델꾼토’의 문성운 연출은 로미오와 줄리엣이 한참 후 다시 만나 자신들의 과거 이야기를 감상한다는 내용의 무대를 꾸몄다. 그들의 애틋한 감정에 초점을 맞춘 연출이 돋보이는 무대였다.

극단 ‘옆집우주’의 김영화 연출은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 이야기를 과감하게 축약했다. 로미오를 그리워하는 줄리엣이 유모로부터 성인용품을 선물 받는다는 내용의 다소 도발적인 무대를 보여줬다. 대구에서 부산을 찾은 극단 ‘헛짓’의 이하미 연출은 달을 향해 우주여행을 떠나는 J가 우주선에서 로미오를 떠올린다는 이야기로 무대를 채웠다.

차승호 연출은 희곡을 집필 중인 셰익스피어 앞에 로미오가 나타난다는 설정을, 강태욱 연출은 로미오와 줄리엣이 가상 세계에서 400년 넘게 살아간다는 독특한 설정으로 ‘산다는 것’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이 밖에도 언어 대신 기타 선율로 두 사람의 대화를 표현하거나, 두 사람을 등장시키지 않고 로미오와 줄리엣 이야기를 풀어내는 등 다양한 방식과 시각의 무대가 관객을 사로잡았다.

올해로 12회째를 맞은 ‘나는 연출이다’는 일반 관객은 물론 지역 연극인들의 축제로 자리매김하는 분위기였다. 이번 행사는 지난 12일부터 14일까지 사흘간 진행됐다. 행사 둘째날인 이날 행사장은 다양한 지역에서 온 관객들로 붐볐고, 80여 석 규모의 공연장은 매진을 기록했다. 연극인들은 공연을 마친 뒤 함께 모여 사진을 찍거나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으로 축제 분위기를 만끽했다. 지역 예술인들이 모여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연출가의 일이 다소 낯선 관객에게 흥미로운 방식으로 연극을 소개한다는 점에서 성장 가능성을 보여준 행사였다. 2011년 처음 시작된 ‘나는 연출이다’는 2021년 개최 이후 2년간 휴식기를 거치고 다시 열렸다.

행사를 주관한 연극제작소 ‘청춘나비’의 강원재 대표는 “연출가들이 같은 텍스트를 가지고 각자 다른 무대를 꾸미는 모습이나, 연출가가 다른 연출가에게 주는 특별 미션을 통해 연출가들의 개성을 볼 수 있다”며 “일반 관객들도 무대마다 차이를 느끼며 더 재밌게 연극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탁경륜 기자 tak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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