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PC통신 시대의 종언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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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리릭, 삐~삑~.’ 이 소리를 기억하시려나. 인터넷을 하려면 PC(개인용 컴퓨터)에 전화선을 연결하던 시절이 있었다. 지글거리는 음향과 함께 접속될 때의 그 경이롭고 짜릿했던 심정. 그러나 데이터 속도가 너무 느려 화면이 열릴 때까지 무한한 인내심이 필요했다. 그래서 문자 위주였던 PC통신이 더 각광을 받는 시대였다. 채팅으로 인연을 맺는다는 내용의 로맨스 영화 ‘접속’이 바로 그 시절 감성을 담은 작품이었다. 한밤중 유난스러운 접속 소리 때문에 가족들이 깰까 봐 가슴 졸인 기억을 품은 이들도 많을 듯하다. 1990년대의 풍경, 그러니까 현재 40~50대 ‘아재’들의 청춘 시절 얘기다.

PC통신을 쓰면 전화는 동시에 쓸 수 없었다. 전화선을 뽑아 모뎀이 설치된 PC에 끼우는 방식이었으니 당연하다. 그러다 비싼 요금 때문에 난리가 나곤 했다. 통신 요금과 서비스 이용 대가인 정보이용료를 같이 내야 했기 때문이다. 당시로는 상상을 초월한 ‘월 10만 원 요금’의 전설은 이 시절을 배경으로 한다. 광속 인터넷을 자랑하는 IT 강국 한국에 그런 시절이 있었다고? 못 믿겠지만 사실이다. 이제는 추억이 된 디지털 역사의 초창기 풍경이다.

국내 첫 PC통신은 데이콤에서 출시한 ‘천리안’이었다. 그 위상은 지금의 네이버와 같다고 보면 된다. 하이텔, 나우누리, 유니텔까지 포함한 4대 PC통신이 인기를 구가했다. PC통신 플랫폼은 파란 바탕에 백색 글자만 있는 단순한 형태. 뉴스 서비스나 게시판, 채팅, 쪽지 보내기 등의 기능은 당시로선 혁신적이었다. 익명성을 기반으로 다양한 소식을 접하고 모르는 사람과도 소통할 수 있었다. 전용 회선의 인터넷 시대가 본격 도래하기 전, 정보 전파·공유의 역할을 다했던 공이 적지 않다. 지금 보면, 화상도 낮은 글자와 투박한 커서가 향수를 자극한다.

PC통신 서비스를 이끈 천리안이 오는 10월에 서비스를 종료하겠다고 선언했다. 서비스를 시작한 지 무려 39년 만이다. 다른 PC통신의 퇴장 뒤에도 꿋꿋이 명맥을 이어왔다는 사실이 놀랍다. PC통신 이후는 인터넷 포털과 아이폰 혁명이 물려받았다. 지금은 모바일과 이미지·영상이 평정하는 시대. 작년부터는 생성형 AI(인공지능)라는 거대한 회오리가 다가오고 있다. 디지털 기술의 급격한 변동과 세계시장의 판도 변화가 아찔할 지경이다. PC통신 시대의 종언 이후, 새로운 맹주는 누가 될 것인가.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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