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디션 조절, 금메달 상상, 자신감…‘삼박자’ 갖춰야” [태극전사에 보내는 승전가]

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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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전사에 보내는 승전가]
유남규 한국거래소 탁구 감독

1988년 남자단식 초대 챔피언
금 1·동 3…3연속 메달리스트
부산서 나고 자란 올림픽 전설

남녀 단식·단체전 등 5개 종목
혼합복식 임종훈-신유빈 4강행
단체전 합쳐 2~3개 수확 목표

“큰 무대 압박감 극복이 관건”
중국 ‘탁구장성’ 라이벌 한국
“10번 중 한 번 이길 수 있어”

탁구 레전드 유남규 감독이 파리 올림픽 개막을 앞두고 인천계양체육관 한국거래소 탁구단 구장에서 한국 탁구대표팀의 선전을 기원하며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유남규 감독 제공 탁구 레전드 유남규 감독이 파리 올림픽 개막을 앞두고 인천계양체육관 한국거래소 탁구단 구장에서 한국 탁구대표팀의 선전을 기원하며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유남규 감독 제공

올 2월 24일 부산에서는 전 세계 탁구 팬들의 가슴을 뜨겁게 달군 장면이 펼쳐졌다. 벡스코 특설경기장에서 열린 ‘2024 부산세계탁구선수권대회’ 남자단체전 4강 한국과 중국의 맞대결. 객관적인 전력상 열세였던 태극전사들은 홈 팬들의 응원을 등에 업고 중국의 ‘핑퐁 어벤저스’를 벼랑 끝까지 몰아세웠다. 첫 주자 장우진(당시 세계랭킹 14위)이 왕추친(2위)을 제압했고, 3단식에서 맏형 이상수(27위)가 마룽(3위)을 꺾으며 2-1로 앞서나갔다. 이후 나머지 두 경기를 잃으며 결국 결승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한국 탁구는 중국의 ‘퍼펙트 우승’을 방해하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예상 밖의 선전에 선수와 관중 모두 한껏 들떴을 때, 당시 남자대표팀 훈련단장으로 경기를 지켜보던 유남규 한국거래소 탁구단 감독은 냉철함을 유지했다. 그의 눈은 더 멀리 파리 올림픽을 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최근 올림픽 개막을 앞두고 <부산일보>와 인터뷰를 가진 유 감독은 당시를 회고하며 “사상 처음 한국에서 열린 세계탁구선수권이다 보니 응원도 많았고 분위기도 좋았는데, 올림픽은 다르다”며 “여느 대회와는 다른 긴장감과 압박감을 얼마만큼 이겨내느냐가 중요하다”고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한국 탁구는 이번 파리 올림픽에서 12년 만의 메달 사냥에 나선다. 남자 탁구는 2012년 런던 대회 이후 12년, 여자 탁구는 2008년 베이징 대회 이후 16년 만의 메달 도전이다.

올림픽 메달, 특히 금빛 메달을 목에 걸려면 우주 최강이라 불리는 ‘탁구장성’ 중국을 넘어야 한다. 중국은 탁구가 처음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1988년 서울 올림픽부터 직전 도쿄 올림픽까지 9차례 대회에서 모두 60개의 메달을 땄다. 이 중 절반이 넘는 32개가 금메달이었다. 중국을 뺀 나머지 나라의 탁구 종목 올림픽 메달 수를 전부 합쳐도 55개로 중국에 못 미친다.

올초 부산세계탁구선수권에서 확인했듯, 극강의 중국에 맞설 수 있는 상대로 우리나라가 꼽힌다. 1988년 안방에서 메달 4개를 수확한 한국 탁구는 1992년 바르셀로나 5개, 1996년 애틀랜타 2개, 2000년 시드니 1개, 2004년 아테네 3개, 2008년 베이징 2개, 2012년 런던 1개 등 모두 18개의 메달(금 3·은 3·동 12)을 목에 걸었다.

유 감독은 1988년 남자단식에서 정상에 오르며 여자복식 현정화(한국마사회 감독)-양영자 조와 함께 올림픽 탁구 초대 챔피언에 올랐다. 남자복식에서도 안재형과 짝을 이뤄 3위에 오르는 등 2개 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어 1992년 바르셀로나, 1996년 애틀랜타 대회 때도 남자복식에서 각각 김택수·이철승과 한 조를 이뤄 동메달을 수확했다. 올림픽 메달만 4개로 한국 탁구 역사상 최다 올림픽 메달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유 감독은 36년 전 서울 올림픽 탁구 남자단식 결승에서 선배 김기택을 꺾고 금메달을 딴 과정을 돌이켜보며 “600일 동안 매일 밤마다 잠들기 전 금메달을 따는 장면을 상상하며 이미지 트레이닝을 했다”고 털어놨다. 올림픽 메달을 위해선 실력 이상의 ‘열정’과 ‘절실함’이 필요하다는 조언이다.

직전 두 번의 올림픽에서 노메달 수모를 겪은 한국 탁구는 이번 대회에서 2~3개 메달을 노린다. 남자대표팀은 장우진(세계랭킹 13위·무소속)·조대성(20위·삼성생명)·임종훈(30위·한국거래소), 여자는 신유빈(8위)·이은혜(42위·이상 대한항공)·전지희(14위·미래에셋)가 출전한다. 남녀 단식·단체전과 혼합복식 등 5개 부문 중 한국의 메달 가능성이 가장 높은 건 혼합복식이다.

2020 도쿄 대회부터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혼합복식에서 우리나라는 임종훈-신유빈 조가 출격한다. 이번 대회 8강전에서 오비디우 이오네스쿠-베르나데트 쇠츠 조(8위·루마니아)를 4-0(13-11 11-8 11-8 11-8)으로 완파한 임종훈-신유빈 조는 한국시간으로 30일 0시 세계 1위 왕추친-쑨잉사(중국) 조와 준결승전을 치렀다. 이날 승패와 관계없이 임종훈-신유빈 조는 기대 이상의 경기력을 과시하며 4강 진출이라는 쾌거를 달성했다.

남녀단체전도 최소 1개 이상 메달이 목표다. 현재로서는 4번 시드를 받은 여자단체전이 남자보다 메달 가능성이 높다. 남자팀은 8강에서 25% 확률로 중국·독일·일본 등 강팀을 만나게 돼, 이들을 피한다면 좀 더 편안하게 메달권인 4강 이상을 바라볼 수 있다.

유 감독은 파리에서 경기를 갖고 있는 한국 탁구 대표팀 선수들에게 남은 기간 컨디션 조절과 이미지 트레이닝, 자신감을 주문했다. 유 감독은 “지금은 막판이기 때문에 기술 어쩌구보다 체력 관리가 중요하다. 연습을 너무 많이 해서 오버페이스를 하면 안 된다”며 “하루 종일 정신없이 훈련을 한 뒤 유일한 자유시간인 잠들기 전 30분만큼은 메달을 목에 거는 긍정적인 상상을 계속 했으면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가장 중요한 건 올림픽이란 큰 무대의 불안감을 어떻게 없앨 것인가이다. 다들 중국을 한 번씩 이긴 경험이 있기 때문에 10번 대결에서 한 번 이기는 경기가 이번 올림픽일 수 있다는 긍정적인 생각으로 자신감을 갖고 공격적으로 임해야 한다”며 “이 삼박자가 맞아떨어진다면 올림픽 메달의 꿈을 현실로 만들 수 있다”고 힘줘 말했다.

한편, 유 감독은 이번 파리 올림픽에 MBC 해설위원으로 합류해 한국 탁구대표팀과 함께하며 ‘금빛 스매시’에 힘을 보탤 예정이다.

유남규 감독이 1988년 서울 올림픽 탁구 남자단식 결승에서 금메달을 확정짓자, 경기장에 주저앉아 환호하고 있다. 부산일보DB(사진공동취재단) 유남규 감독이 1988년 서울 올림픽 탁구 남자단식 결승에서 금메달을 확정짓자, 경기장에 주저앉아 환호하고 있다. 부산일보DB(사진공동취재단)
유남규 감독(가운데)이 1988년 서울 올림픽 탁구 남자단식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고 은메달리스트 김기택(왼쪽)과 함께 관중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부산일보DB(사진공동취재단) 유남규 감독(가운데)이 1988년 서울 올림픽 탁구 남자단식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고 은메달리스트 김기택(왼쪽)과 함께 관중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부산일보DB(사진공동취재단)
유남규 감독이 1988년 서울 올림픽 탁구 남자단식에서 경기를 펼치고 있다. 부산일보DB(사진공동취재단) 유남규 감독이 1988년 서울 올림픽 탁구 남자단식에서 경기를 펼치고 있다. 부산일보DB(사진공동취재단)


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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