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추상의 선구자, 오영재를 불러오다

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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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재 작가 회고전 ‘파라다이스’
미광화랑에서 27일까지 열려
색면 추상 완성 과정 볼 수 있어
30여년 지나도 세련된 멋 느껴

오영재 작가의 초기 풍경화 ‘하정’. 산세의 표현에서 색면 추상의 기본 형태가 보인다. 미광화랑 제공 오영재 작가의 초기 풍경화 ‘하정’. 산세의 표현에서 색면 추상의 기본 형태가 보인다. 미광화랑 제공

부산 수영구 광안리 해수욕장 인근에 자리 잡은 미광화랑은 부산 근대미술 분야로 전국에서 유명하다. 지난 15년간 ‘꽃피는 부산항’이라는 이름으로 부산 1세대 작가들을 꾸준히 발굴했고 11번의 전시를 진행했다. 당시 이 분야를 연구하는 학자도 드물었고 자료도 제대로 없어 미광화랑 김기봉 대표는 공부하면서 작품을 모았다. 덕분에 미술 시장에서 가격조차 형성되지 못했던 부산 근대 작가 작품이 팔리기 시작했고, 작품을 찾는 수집가도 생겼다.

15년간 부산 근대미술에 파고 들었던 김 대표가 꽂힌 작가가 1명 있다. 따로 회고전을 해서 이 작가의 진가를 제대로 알리고 싶었다. 팔 수 있는 작품이 한 점도 없고 모든 작품을 빌려오느라 정작 상업 화랑으로서는 남는게 없는 고 오영재 회고전 ‘파라다이스’를 여는 특별한 이유이다.

“오영재 작가는 부산 추상의 선구자로서 시대를 앞서나갔습니다. 1980~1990년대 그려진 색면 추상화는 2024년 현재에 봐도 세련된 멋이 느껴집니다. 최근 현대 미술 작품으로 보일 정도죠. 이렇게 대단한 작가가 부산에 있었는데 아직 오영재 작가를 모르는 이들이 많아 안타까웠습니다.”


오영재 ‘파라다이스’. 미광화랑 제공 오영재 ‘파라다이스’. 미광화랑 제공

오영재 ‘파라다이스-얽혀진 관계 그리고 사랑’. 미광화랑 제공 오영재 ‘파라다이스-얽혀진 관계 그리고 사랑’. 미광화랑 제공

오 작가는 1940년대부터 사실주의 계열의 그림을 그려오다 1960~1970년대에는 조형적 실험에 기반한 구상화 작업을 발전시켰다. 이후 1980년대부터는 조형적 실험을 넘어 색채와 패턴을 반복적으로 전개한 입체적인 추상주의를 완성하게 된다. 오 작가는 생전에 “대상의 면을 분할하여 대상이 지니는 깊이와 넓이, 힘과 무게를 조명함으로써 그것이 자아내는 감동을 그림으로 표현한다”라고 말했다.

영도에서 30년을 살았고 이후 법기수원지로 이사해 1999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작가는 평생 자연과 함께했다. 자신의 곁을 안온하게 감싸주는 산과 바다, 강과 숲 등을 캔버스에 색과 면의 조화로 펼쳐냈고 추상적인 운율로 자연의 아름다움을 표현했다. 그의 그림은 형체에서 벗어나 색과 면의 반복적인 리듬으로 진정한 낙원, 파라다이스를 구현했다. 색면 추상의 완성 ‘파라다이스’ 시리즈가 그것이다.


회동 수원지를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수원지 풍경’. 미광화랑 제공 회동 수원지를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수원지 풍경’. 미광화랑 제공

오 작가의 뛰어난 그림 솜씨 덕에 그의 풍경화는 잘 팔렸다고 한다. 주문이 들어올 정도였지만, 색면 추상으로 나간 작가는 생활고에 시달려도 타협하지 않았다. 궁핍한 생활은 나아질 기미가 없었고, 그를 아끼던 허천 수필가를 비롯한 주위 사람들이 모여 1989년 ‘오영재 화백 후원회’를 만들어 회비로 생활을 지원할 정도였다.

완벽하지 않으면 보여주지 않겠다는 생각에 개인전도 예순이 넘어 1984년에야 처음 열었다. 1990년 두 번째 전시회를 거쳐 1999년 세 번째 전시를 앞두고 지병으로 사망했다. 유족은 그의 작품 대부분을 부산시립미술관에 기증했고 이는 역설적으로 오 작가의 작품 가격이 형성되지 못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말도 있다. 시중에 그림이 유통되고 수집가와 미술 애호가에게 노출되며 작품이 회전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사회나 뭇 사람에게 봉사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올바른 봉사가 되려면 좋은 작품을 성립시켜야 된다. 좋은 작품은 눈으로 보아서도 기쁨을 주고 느낌을 통해서도 시원함을 선사하는 보편적 감동이 있어야 할 것이다. 보여지는 것에 치중하면 미의식으로서의 정신적 질이 약화되거나 소외된다. 정신적 미의식이 소외되면 기(氣)가 빠져 예술로서의 감동성이 성립되지 않는다. 반대로 정신적 미의식의 질이 두드러져도 보여지는 것이 부자연스럽다면 흥이 깨진다. 보여지는 것과 정신적 미의식이 균일하게 종합되었을 때, 올바른 작품이 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70이 넘어서도 하루 10시간 이상을 작업에만 몰두했다던 오 작가가 늘 가슴에 새긴 작업 철학이라고 한다. 30~40년이 지나도 오 작가의 작품이 미학적으로도, 개념으로도 뒤지지 않고 빛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듯하다. 전시는 27일까지 미광화랑에서 열린다.


오영재 ‘파라다이스’. 미광화랑 제공 오영재 ‘파라다이스’. 미광화랑 제공


오영재 ‘파라다이스’. 미광화랑 제공 오영재 ‘파라다이스’. 미광화랑 제공


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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