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인문학’이 쏘아 올린 수구, 지구를 구원할까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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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수구인 밤’ 일파만파
“지구는 해양이 71% 차지”
김태만 교수 저서에서 영감

한국해양대 동아시아학과 김태만 교수가 쏘아 올린 ‘수구’(水球)의 파문이 심상치 않다. 올해 초부터 서울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며 위기에 처한 지구(地球)를 구할 대안으로까지 떠오르는 모양새다. ‘수구’란 땅보다 물(바다)이 많은 우리 별의 특성을 고려해 기존의 ‘지구’를 대신할 대안적 명칭이다. 2022년 11월에 나온 김 교수의 <해양인문학>(호밀밭)에서 처음으로 논리적 이유와 함께 지구 대신 수구라고 써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서울대 문화공연장 파워플랜트에서 ‘수구인의 밤’ 행사가 열리고 있다. ‘수구를 지켜라’ 제공 서울대 문화공연장 파워플랜트에서 ‘수구인의 밤’ 행사가 열리고 있다. ‘수구를 지켜라’ 제공

15일 서울대 ‘수구를 지켜라’ 팀의 최지예·이연수·박재아(모두 조소과) 씨가 앞으로의 활동과 연구를 위한 자문을 받기 위해 김 교수를 찾아오면서 이 같은 사실이 부산에도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들은 지난 4월 26일 서울대에서 처음으로 열린 ‘수구인의 밤’ 행사를 기획했던 장본인이다. 서울대 ‘수구를 지켜라’ 팀은 미디어아트를 통해 해양예술 영역으로 나아가겠다는 취지로 지난해에 결성됐다. 이들은 해양오염에 ‘플로깅’하는 식으로만 활동하다가, <해양인문학>을 읽고부터 바다를 새롭게 바라보게 되었다고 했다. <해양인문학>에는 ‘인류가 살아가는 지구는 해양이 71%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니 이 푸른 행성을 지구(地球)가 아니라 수구(水球)로 여겨야 한다. 그것이 푸른 행성, 수구를 지키는 길이기 때문’이라고 나온다.


바다 생물로 분장한 배우들이 공연장을 찾은 수구인들 사이로 헤엄쳐 다니고 있다. ‘수구를 지켜라’ 제공 바다 생물로 분장한 배우들이 공연장을 찾은 수구인들 사이로 헤엄쳐 다니고 있다. ‘수구를 지켜라’ 제공

‘수구인의 밤’이 열렸던 당시 서울대 관악캠퍼스에 위치한 문화공연장 파워플랜트에는 250여 명의 청년들이 몰려 대성황을 이루었다고 한다. 김 교수를 비롯한 참석자들의 설명과 유튜브 동영상 등에 따르면, 당시 행사장은 수구의 세계를 제대로 구현했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세상이 결국 물에 잠기고 인공적으로 산소가 주입되는 미래의 가상 공간이 배경이었다. 바닷속을 연상시키는 푸른빛 조명 아래 흘러나오는 수중 세계의 영상과 수중 음향은 수구의 신비로움을 더했다.


바다 생물로 분장한 배우가 디제잉을 하고 있다. ‘수구를 지켜라’ 제공 바다 생물로 분장한 배우가 디제잉을 하고 있다. ‘수구를 지켜라’ 제공

갈치·문어·해파리·뱀장어·민달팽이·해조류 등으로 분장한 학생 배우들이 공연장을 찾은 수구인들 사이로 헤엄쳐 다녔다. 수구인이란 해양인문적 삶을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미래의 인간형을 말한다. 해양생태·해양먹거리·해양쓰레기 등의 심각한 주제가 공연과 디제잉 파티를 통해 물에 녹듯이 쉽게 풀어졌다. 이날 수구인들은 저탄소식품인 ‘블루푸드(양식하거나 어획한 수산물로 만든 식품)와 무알코올 음료로 한껏 흥에 취했다. 서울대 온실가스·에너지 관리센터는 친환경 관련한 멘토링으로, 미대 교수들은 무대 설치 등에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공연 자체가 서울대 문화예술원에서 하는 ‘스튜던트 스케일 업’ 프로그램 일환으로 제작됐다.


서울대 문화공연장 파워플랜트에서 열린 ‘수구인의 밤’ 행사에는 250여 명의 청년들이 몰렸다. ‘수구를 지켜라’ 제공 서울대 문화공연장 파워플랜트에서 열린 ‘수구인의 밤’ 행사에는 250여 명의 청년들이 몰렸다. ‘수구를 지켜라’ 제공
수구인들이 해파리로 분장한 배우 옆에서 블루푸드를 집어 들고 있다. ‘수구를 지켜라’ 제공 수구인들이 해파리로 분장한 배우 옆에서 블루푸드를 집어 들고 있다. ‘수구를 지켜라’ 제공

상상력과 창의력으로 호평을 받은 ‘수구인의 밤’은 하룻밤 행사로 그치지는 않을 전망이다. 9월 말 서울 성동구 성수동 공연이 확정됐고, 이번 부산 방문을 통해 연말에 열리는 아트페어 울산에도 초청을 받는 등 공연 요청이 잇따르고 있어서다. ‘수구를 지켜라’ 팀은 후행 연구의 일환으로 다양한 연계 포럼 및 라운드테이블을 준비 중에 있다. 독립출판사도 운영하는 이연수 씨는 해양인문학을 실천하는 전문가·작가·예술가들을 인터뷰한 책을 연말에 출판할 예정이다.

김 교수는 “지구가 아니라 수구로 부르자는 주장이 점차 전국적인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영민한 미래의 예술가들이 가장 먼저 적극적인 방법으로 수구를 받아들이는 모습이 매우 고무적이다”라고 말했다. 기후위기가 일상이 된 요즘, 서울에서 먼저 시작된 수구에 관한 관심 고조가 흥미롭다. 정작 ‘해양수도’ 부산에서는 수구 관련한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는 사실이 아쉽다. <해양인문학>이 쏘아 올린 수구가 위기의 지구를 구원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해양인문학> 표지. <해양인문학> 표지.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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