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질병은 더 큰 이익을 위한 대가였다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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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완전한 인간 / 마리아 마르티논 토레스

의사 출신 고인류학자 저자
노화·죽음·감염병·걱정 통해
우리가 누구인가 심층 연구


코로나19로 인해 인간의 신속한 백신 개발 능력을 확인하게 됐다. 사진은 2021년 당시 인도네시아의 코로나 확산으로 수도 자카르타에서 희생자 묘역 조성작업이 한창인 모습이다. 연합뉴스 코로나19로 인해 인간의 신속한 백신 개발 능력을 확인하게 됐다. 사진은 2021년 당시 인도네시아의 코로나 확산으로 수도 자카르타에서 희생자 묘역 조성작업이 한창인 모습이다. 연합뉴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건강할 때나 병들 때나….” 죽음이 갈라놓을 때까지 누군가를 사랑하겠다는 맹세를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 봤을 것이다. 많이 아픈 상황에서도 누군가가 나를 사랑한다면 그것은 진짜 사랑일 것이다. 여기서 다룰 문제는 사랑이 아니라 인간의 질병이다. 근본적으로 왜 우리는 병에 걸리고 늙어 가는 고통을 받는 것일까. 암 발병률이 계속 증가해도 뾰족한 대책이 아직 없다. 의사들도 이런 문제까지는 잘 모르는 것 같아서 답답하다.

<불완전한 인간>은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이야기해 준다. 저자의 이력부터가 흥미롭다. 마리아 마르티논 토레스는 고인류학자가 되기 위해 먼저 의학을 전공하기로 일찍부터 마음먹은 이다. 고인류학자와 의사의 공통점은 인간에 대한 관심이다. 차이점은 의학은 한 인간의 현재에 초점을 맞추는 반면에 고인류학은 개인에서 벗어나 속한 종에 접근한다는 것이다. 두 가지 관점을 오가며 연구를 하다 인간의 결함인 질병이 우리 종의 역사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고, 우리가 누구인지를 밝혀낼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이 책의 첫 두 장은 인간의 영원한 숙제인 ‘죽음’과 ‘늙음’을 다룬다. 침팬지는 몇 살이 되면 노인으로 분류할까? 33세다. 침팬지의 기대수명은 53세, 고릴라 54세, 오랑우탄 58세를 넘지 못한다. 인간의 노화 속도는 다른 영장류보다 훨씬 느리다. 인간이 자녀를 낳는 데 전념하는 시간(25.5년)은 유인원의 평균 시간(29년)보다 짧다. 번식하지 않는 기간을 연장해 수명을 늘린 셈이라는 사실이 어째 오싹하게 느껴진다.

초고령사회를 앞두고 당뇨병과 알츠하이머에 대한 경고등이 켜진 지 오래다. 소개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인간종은 진화 역사의 어느 시점에 당뇨병과 알츠하이머에 걸리기 쉬운 돌연변이를 얻었지만, 동시에 훨씬 더 오래 살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이런 질병들은 노화로 인한 손상이라기보다 우리 종의 수명 연장을 위해 자연 선택이 만든 장수의 결과라는 것이다. 병에 걸리는 이유를 알았다고 결과가 달라지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위안은 된다.

의학과 고인류학을 전공했다고 해서 팬데믹이 비껴가지는 않는다. 저자는 코로나를 약하게 앓고 이 책을 쓸 수 있어서 행운이었다고 고백한다. 화석으로 볼 때 인류에게 감염병이 나타난 시기는 1만 년 전이다. 아직도 수수께끼로 남아 있는 네안데르탈인의 멸종도 어쩌면 이민자인 호모 사피엔스가 도착하며 생겨난 감염병이 원인일지도 모른다고 조심스럽게 추정한다. 마치 15세기에 유럽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에 홍역과 천연두를 들여와 원주민들을 멸절시킨 것처럼 말이다. 아무튼 코로나를 통해 인류는 1년도 채 안 되는 시간에 여러 개의 백신을 개발하고 접종시켜 사망률을 급격히 낮출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확인한 점은 고무적이다.

마침 가족 중에 걱정이 많은 사람이 있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3장 ‘우리 종은 걱정하기 위해 태어났지’도 매우 흥미로웠다. 네안데르탈인은 근친 교배로 인해 매우 동질적인 종이었고, 반면에 호모 사피엔스는 가변적이고 유연한 종이었다. 빙하기와 같은 심각한 위기의 순간에는 모든 것을 조금씩 다 받아들여야 유리하다. 과도한 관심을 쏟는 사람, 세심한 사람, 살짝 미친 사람, 생기지도 않은 위험에 과도하게 신경 쓰는 사람, 위협이 없는 곳까지 내다보는 사람이 함께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7만 8000년 전 아프리카의 구덩이에서 나뭇잎으로 만든 천연 수의로 감싼 3살 정도 되는 아이가 발견된 이야기가 끝부분에 나온다. 네안데르탈인의 화석 기록에도 심각한 질병으로 고통받는 개체를 버리지 않고 돌본 흔적이 나온다. 인간은 태곳적부터 죽은 자를 방치하지 않았다. 예술·문학·종교 모두가 결국 죽어서 없어지는 자연현상에 대한 방어이자, 내가 여기 있었다는 기록을 남기려는 본능이었다.

질병은 무조건 결점이 아니라 더 큰 이익을 위해 치르는 대가인 셈이었다. 문학작품에서 시작해 과학적 증거와 진화에 대한 최신 이론을 바탕으로 이어지는 스토리텔링 덕분에 흥미진진하게 읽힌다. 마리아 마르티논 토레스 지음/김유경 옮김/현암사/292쪽/1만 9000원.


<불완전한 인간> 표지. <불완전한 인간> 표지.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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