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세상 좋아졌다는데 나는 왜 불편한가?

김종열 기자 bell10@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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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멋져 보이는 것들의 사회학 / 오찬호

에어컨·냉장고·스마트폰·플라스틱
현대인의 삶을 편리하게 한 신문물
그 이면에 숨겨진 어두운 부분 조명

<세상 멋져 보이는 것들의 사회학> 표지. <세상 멋져 보이는 것들의 사회학> 표지.

사물이나 현상에는 늘 양면성이 있기 마련이다. 우리 삶을 편리하게 만든 다양한 신문물도 마찬가지다. 해외에서만 판매되는 물건을 클릭 한 번으로 안방에서 구매하고 스마트폰으로 손쉽게 공과금까지 내는 세상이 됐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과연 행복해졌을까. 잘 모르겠다. “그 시절이 좋았지”라는 늙은 아재의 넋두리가 단지 그냥 던져 보는 하소연만은 아님을 안다. <세상 멋져 보이는 것들의 사회학>은 현대인의 삶을 떠받치는 혁신적 기술·상품의 이면에 존재하는 불편한 현실에 사회학이라는 렌즈를 들이댄다.

개인적으로 인류 최고의 발명품이라 여기는 에어컨에 대한 이야기부터 해보자. 에어컨을 발명한 윌리스 캐리어 박사에게는 노벨 평화상을 줘도 모자라다 생각한다. 에어컨이 없었다면 요즘처럼 무더운 여름날 수많은 짜증으로 얼마나 많은 이웃 간 국지적 분쟁이 발발했을지 모를 일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사람들은 ‘평화 전도사’ 에어컨이 내 집을 시원하게 하기 위해 지구를 뜨겁게 한다는 불편한 사실을 애써 모른 척 한다. 비록 오랫동안 에어컨 냉매제로 쓰였던 CFC(염화불화탄소)는 오존층 파괴 물질이라는 이유로 현재 사용이 금지되었지만, CFC의 대체제로 사용되는 HCFC(수소염화불화탄소), HFC(수소불화탄소)도 유해하기는 매한가지다. HCFC 역시 오존층을 파괴하고, HFC는 이산화탄소 1000배 수준의 온실가스를 내뿜는다. 덕분에 우리는 2029년엔 1800년대 대비 평균 1.5도나 높은 지구에서 살아야 한다.

갈수록 몸집이 커지는 냉장고(1980년대 가정용 냉장고 용량은 200L 수준이었지만, 이제 900L도 흔히 볼 수 있을 정도다)는 또 어떠한가. 사실 냉장고만큼 ‘열 일’하는 가전제품도 없다. 24시간 365일 꺼지지 않는 살림살이는 냉장고가 유일하다. ‘살림꾼’ 냉장고의 용량이 커지면서 주부들의 삶의 질도 높아졌다. 매일 시장을 볼 필요도 없이 많은 식재료를 한꺼번에 사다가 냉장고에 쑤셔 넣고 조금씩 꺼내 먹게 됐다. 냉장고 용량의 대량화와 대형마트의 성장은 우상향하는 일차함수의 관계다. 30년 전만 해도 가족의 저녁 식사를 위해 누군가는 매일 그날 먹을 고등어 한 마리, 콩나물 한 봉지를 사러 나와야 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냉장고 용량이 커지면서 시장은 줄어들고 골목 가게는 사라졌고, 이웃 아저씨는 일자리를 잃었다.

그것들뿐이랴.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의 든든한 지원군 역할을 하던 ‘기적의 소재’ 플라스틱은 이미 감당하기 어려운 쓰레기를 배출하는 오염원이 되어 버렸고, ‘스마트하다’던 기계(스마트폰)는 엉터리 뉴스 하나를 못 거르고 가짜 뉴스를 퍼나르는 수단이 됐다.

물론 신문물의 등장은 단점보다 장점이 많다. 책 또한 ‘러다이티즘’처럼 신문물이 주는 경이로운 혜택을 포기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다만 우리가 흔히 “세상 좋아졌다”는 말로 간과하는 이면을 놓쳐서는 안된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책의 부제 ‘그럼에도 불구하고 던져야 할 질문’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덤으로, 각 신문물별 챕터 서두에 제시되는 해당 신문물과 관련된 다양한 통계치도 책을 읽는 재미를 더한다. 그래프라서 간단명료하면서도 강렬하다. 대한민국 성인의 하루 평균 독서 시간(18.5분)이 턱없이 적다는 통계가 스마트폰 챕터에 붙어 있는 점도 흥미롭다. 그때 그 시절 CF 카피가 떠오른다. “잠시 꺼두셔도 좋습니다.” 하지만 가능할까. 스마트폰이 보급되기 전인 그땐, 끄더라도 전화와 문자만 막혀 버리던 시절이었다. 지금은? 사실 자신은 없다.


김종열 기자 bell10@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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