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읽기] 일본의 진주만 공습이 합리적 결정이라고?

김종열 기자 bell10@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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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 존 미어샤이머·서배스천 로사토

<국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표지. <국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표지.

비이성적 독재자, 제국주의적 야망을 품은 과대망상증 환자…, 우크라이나 침공을 결정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대한 서구 석학·언론의 묘사다. 그러나 <국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의 저자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결정은 합리적이었다”는 매우 도발적인 주장을 펼친다. 우크라이나를 러시아에 대한 방어막으로 삼으려는 서방의 속셈을 간파한 러시아는 이를 ‘실존에 대한 용납할 수 없는 위협’으로 간주했고, 선제적 해결책으로 ‘전쟁’을 택했다는 거다. 게다가 독재자 푸틴의 독단적 결정이 아닌 핵심 참모들과의 협의의 결과였다.

책의 도발은 여기에서 멈추질 않는다. 진주만을 공격한 일본의 결정 또한 무모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1940년대 초반 팽창한 일본 제국주의를 견제하기 위해 미국은 영국 등과 손잡고 일본에 석유와 석유 제품 수출을 금지한다. 이들 제품에 대한 수입 의존도가 높은 일본으로선 경제가 무너질 정도로 긴박한 상황이었다. 협상조차 어려웠던 일본은 가만히 앉아서 당할 바에야 선제공격으로 승리의 가능성을 높이겠다고 판단한다. 이 또한 당시 상황에선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라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당시 국내에선 러시아의 입장을 두둔하는 의견도 일부 있었다. 그러나 일본의 사례만큼은 한국인이라면 누구도 인정하기 힘들다. 그럼에도 책은 이 두 사례를 별반 다르지 않게 보고 있다. 우리가 이중적인가. 아니다. 그만큼 국제정치라는 것이 주관적이고 상대적이라는 방증이다.

저자의 의도가 전쟁을 정당화하려는 것은 아니다. 전쟁은 결코 일어나선 안 될 일이지만, 그것이 어느 한 편의 전쟁광에 의해 일어나는 게 아니라는 점을 놓치지 말자는 역설이다. 개전(開戰)의 결정 역시 특정 개인이 아닌 자신이 속한 사회를 위한 ‘제한된’ 합리적 결정일 경우가 많다. 이를 도덕적 관점(이 또한 주관적이다)에서 ‘옳다’ ‘그르다’로만 해석한다면 우리는 절대 이 무자비한 국제 무대에서 살아남기 힘들다. 국제정치는 단순히 착한 편-나쁜 편으로 갈라지는 소년만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천성이 삐뚠 탓인가, 이런 도발적인 책이 너무 좋다. 존 미어샤이머·서배스천 로사토 지음/권지현 옮김/서해문집/400쪽/2만4000원.


김종열 기자 bell10@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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