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원 투표 직전 불거진 ‘공소 취소 부탁’ 폭로…한동훈 “신중치 못했다”

전창훈 기자 jch@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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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경원 원희룡 등 경쟁 주자뿐만 아니라 친윤계도 “당 아픔 후벼파” 맹공
“내가 하면 내부총질이냐” 발끈했던 한동훈 당내 기류 악화에 신속 사과
비한계 ‘정체성’ 공격 빌미 됐으나 ‘실언’ 인정하면서 전대 영향력 관측은 엇갈려

국민의힘 한동훈 당 대표 후보가 18일 서울시의회에서 열린 국민의힘 서울시의회 의원간담회에 참석하기에 앞서 ‘패스트트랙 투쟁 폄훼 한동훈 후보 당대표 자격 없다’가 적힌 피켓을 든 이희원 서울시의원과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 한동훈 당 대표 후보가 18일 서울시의회에서 열린 국민의힘 서울시의회 의원간담회에 참석하기에 앞서 ‘패스트트랙 투쟁 폄훼 한동훈 후보 당대표 자격 없다’가 적힌 피켓을 든 이희원 서울시의원과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나경원 후보가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사건 공소 취소’를 부탁했다는 전날 한동훈 후보의 폭로가 막바지에 다다른 국민의힘 당 대표 경선의 쟁점으로 급부상했다. 나 후보는 물론 친윤(친윤석열)계에서도 “당 전체의 아픔을 당내 선거에서 후벼 파서야 되겠느냐”며 한 후보를 집중 성토했고,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은 “수사 대상”이라며 ‘댓글팀’ 공방에 이어 여권의 분열에 기름을 부었다. 한 후보 측은 파장이 커지자 18일 “신중하지 못했던 점 죄송하게 생각한다”며 신속하게 사과했으나, 상대 후보 측은 한 후보의 ‘보수 정체성’과 연결 지으며 파상공세를 펴고 있어 하루 앞으로 다가온 당원 투표에 변수가 될지 주목된다.

나 후보는 이날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는 모임’ 주최 세미나 축사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문재인 정권이 야당 탄압으로 보복 기소한 사건에 대해 (부탁)언급을 하는 것을 보고 굉장히 분별력이 없다고 생각했다”며 한 후보를 거듭 비판했다. 앞서 한 후보는 전날 방송토론회에서 자신의 법무부 장관 재직 시절을 겨냥해 ‘실질적 성과가 없었다’는 나 후보의 지적이 이어지자 “저한테 본인 패스트트랙 사건 공소 취소해달라고 부탁한 적 있으시죠”라고 말했다. 2019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 등을 놓고 벌어진 국회 ‘패스트트랙 충돌 사태’ 당시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원내대표이던 나 후보는 특수공무집행 방해 등 혐의로 기소돼 재판 받고 있는데, 자신의 법무부 장관 재직 시절 나 후보가 이 사건 공소를 취소해달라는 부탁을 했다고 폭로한 것이다.

그러나 발언 직후부터 당시 민주당의 입법 폭주를 막으려다 소속 의원과 당직자들이 무더기로 기소된 아픈 사건에 대해 한 후보가 반격의 소재로 활용한 것은 부적절했다는 비판이 당내에서 터져나왔다. 원희룡 후보는 “피아 구분을 못 하고 동지 의식이 전혀 없는 걸 보면 정말 더 배워야 한다”고 가세했고, 친윤계 핵심들과 당 소속 광역 지자체장들도 한 후보를 난타했다. 김기현 의원은 페이스북에서 “폭주하는 민주당의 악법을 막는 정의로운 일에 온 몸을 던졌다가 억울한 피해자가 된 우리 동지들의 고통에 공감하지는 못할망정, 2차 가해를 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지적했고, ‘원조 친윤’인 윤한홍 의원은 의원 단체 대화방에 한 후보 발언에 대한 비판 글을 올리기도 했다. 계파색이 옅은 이양수 의원도 이날 한 라디오에서 한 후보의 발언을 “전략상 실점한 것”이라며 “(그 사건으로)재판받는 의원들이 30명인데, 그 감정선을 건드렸다”고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여기에 “자기가 불리하면 무엇을 더 까발릴지 걱정”(홍준표 대구시장), “경망스러움과 분노를 금할 수 없다”(김태흠 충남지사), “당을 망하게 하는 것”(이철우 경북지사) 등 한 후보에 비판적인 지자체장들도 일제히 비난 글을 SNS에 올렸다.

여당의 ‘자폭 전대’ 양상에 대해 민주당 등 야권도 “엄정 수사가 필요하다”며 공세에 나섰다. 민주당 박찬대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전당대회가 불법 폭로 대회가 됐다. 삼류 막장 드라마를 보는 듯하다”면서 “반드시 수사를 통해서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고, 사법 처리 해야 한다”고 말했고,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 역시 “이원석 검찰총장은 이들을 수사할지에 대해 밝히라”고 촉구했다.

한 후보는 자신의 발언 직후 ‘내부 총질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자 “나 후보나 원 후보는 (전당대회 기간)내내 있지도 않은 이야길 해서 절 공격했다”며 “(다른 후보들이)이야기하는 건 검증이고, 제가 말하는 건 내부 총질이냐”며 반박했고, 한 후보 측 장동혁 최고위원 후보도 “내부 총질이나 제 살 깎아 먹기가 아니고 계속된 공격을 막는 과정에서 한 말”이라고 방어에 나섰다. 그러나 당내 여론이 급격히 악화되자 한 후보는 이날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패스트트랙 충돌 사건은 공수처법 등 악법을 막는 과정에서 우리 당을 위해 나서다가 생긴 일”이라며 ”패스트트랙 충돌 사건으로 고생하는 분들을 폄훼하려는 생각이 아니었다”고 자신의 발언에 대해 사과했다. 한 후보가 정치에 입문하고 나서 자신의 언행에 대해 공개적으로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당내에서는 실언으로 보이긴 하지만 나, 원 후보가 줄곧 비판해온 한 후보의 ‘보수 정체성’ 문제를 확산시킬 수 있는 사안이라는 점에서 하루 앞으로 다가온 당원 투표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시각이 있는 반면, 한 후보가 이례적으로 신속히 사과한 만큼 큰 영향은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엇갈린다.


전창훈 기자 jch@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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