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삐도 없던 시절, 우린 늘 동보서적에서 만났죠”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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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요아킴 일곱 번째 시집
‘부산을 기억하는 법’ 출간
‘장소’에 ‘삶의 이야기’ 결합

일곱 번째 시집 ‘부산을 기억하는 법’을 낸 김요아킴 시인이 구덕운동장 앞에 서서 추억이 깃든 구덕야구장이 사라진 것에 대해 아쉬워하고 있다. 일곱 번째 시집 ‘부산을 기억하는 법’을 낸 김요아킴 시인이 구덕운동장 앞에 서서 추억이 깃든 구덕야구장이 사라진 것에 대해 아쉬워하고 있다.

부산작가회의 회장 김요아킴 시인이 일곱 번째 시집 <부산을 기억하는 법>(도서출판 전망)을 냈다. 김 시인과 만날 약속 장소를 고민하다 구덕운동장만한 곳이 없겠다 싶었다. 그는 오십 중반에 이른 지금도 사회인 야구팀을 두 개나 뛰는, 대한민국 최초의 본격 야구 시집 <왼손잡이 투수>를 낸 시인이자 또한 야구인이기 때문이다.

어김없이 이번 시집에도 ‘안녕, 구덕운동장’이란 시가 꽂혀 있었다. ‘하얗고 푸른 교복이 절묘하게 쌍벽을 이루며 명승부를 연출하던 그라운드 가장 높은 곳에서 내리꽂는 강속구로 끝내 승리를 지켜낸 그해 한국시리즈 영웅의 금테 안경이 빛났던 곳.’ 이 시는 ‘철거 명령이 붉게 떨어졌다’로 시작해 ‘하지만 명령은 일사분란했고 한순간이었다, 안녕’으로 쓸쓸하게 끝이 난다. 부산 최초의 야구장이었던 구덕야구장은 2018년에 철거됐고, 지금은 구덕운동장마저 재개발 논란이 한창이다.

‘‘마’의 결기’만큼 부산사람의 정서를 보여 주는 시가 또 있을까. 롯데 자이언츠 야구 응원에 자주 등장해 설명이 필요 없는 ‘마!’다. 혹시나 김 시인이 야구 유니폼을 입고 오는 게 아닌가 걱정했지만, 다행히 평범한 교사 같은 모습으로 나타났다. 그의 부산살이는 1993년 교단에 발을 디디면서 시작되어 30년이 넘었다. 시를 언제 쓰느냐고 물었더니 시험 감독할 때 집중력이 생겨 시 구상이 잘 된다는 예상 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이번 시집에서는 부산의 모습을 자신의 삶을 통해 시적으로 보여 주고 싶었다고 했다.

‘동보서적, 희미한 옛 그림자’가 대표적으로 그런 사례 같다. 삐삐가 없던 시절, 시인은 주로 동보서적 1층 시집 코너에서 연인과 만나자고 약속하고 무작정 기다리고 했단다. 오래된 장소가 사라지면 추억도 함께 사라져서 슬프다. 사라진 동보서적, 혹은 태화백화점을 떠올리니 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가 선명하게 살아난다.


<부산을 기억하는 법> 표지. <부산을 기억하는 법> 표지.

오늘날 부산의 모습에 돼지국밥을 빼놓을 수 없다. 노포의 벽면을 장식할 만한 ‘돼지국밥을 탐하다’라는 시가 나왔다. ‘후후 불며 뜨는 한 숟가락 국물/짠하게 식도를 맴돌며, 퇴근길/한 잔 소주를 불러올 때/비로소 부산 사람이 된다.’ 이 시를 읽고 나면 “캬~!”라는 감탄사가 자동으로 따라 나오지 않을까 싶다. ‘영광도서에서 한 권 시집을 사면, 꼭/맞은 편 국숫집에서 그 활자를 돌돌 말아 올렸다’로 시작하는 시 ‘회국수에 시집을 비비다’도 일품이다.

<부산을 기억하는 법>에는 금정산에서 시작해 오륙도, 화명동, 덕포동, 성지곡 수원지까지 부산의 많은 장소와 그에 얽힌 이야기가 나온다. 그동안에도 특정 장소나 지역성을 살린 시는 있었지만, 부산의 장소성을 테마로 해서 시집으로 엮은 경우는 잘 없었다. 수박처럼 붉은 부산의 속살을 꺼내어 차려 놓은 시집이다. 이 시집을 바탕으로 시나리오를 만들어 부산 영화를 찍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김 시인은 “사라져 가는 것에 대한 기억을 사람들과 같이 되새겨 보자”라고 제안한다.

‘이방인의 묘비는 산 자의 주춧돌이 되고/대를 이어갈 든든한 옹벽이 되었다. 아무도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이 아미동에/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는 없다//여기는, 가난으로 생과 사를 초월하는 힘을 가진 곳이다.’ 김 시인의 시 ‘아미동은 여전히 힘이 세다’를 읽으며 부산의 저력을 생각한다. 글·사진=박종호 기자

김요아킴 시인이 재개발 논란이 한창인 구덕운동장 앞에 앉아 생각에 잠겨 있다. 김요아킴 시인이 재개발 논란이 한창인 구덕운동장 앞에 앉아 생각에 잠겨 있다.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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