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년 된 ‘지역 최고 헌책방’ 새 주인 어디 없나요?

김현우 기자 khw82@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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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에서 64년 운영…헌책 등 30만 권 보유
이무웅 대표 별세 후 경영난 심화…폐업 위기
지역사회 “공공 책방 기능 살려야” 목소리도

문을 연 지 60년이 넘은 경남 진주시의 가장 오래된 헌책방 ‘소문난 서점’. 창고를 포함해 30만 권에 달하는 책을 보관 중이다. 김현우 기자 문을 연 지 60년이 넘은 경남 진주시의 가장 오래된 헌책방 ‘소문난 서점’. 창고를 포함해 30만 권에 달하는 책을 보관 중이다. 김현우 기자

문을 연 지 60년이 넘은 경남 진주시의 가장 오래된 헌책방 ‘소문난 서점’이 경영난에 폐점 위기에 처했다. 오래된 고서들은 물론, 지역의 역사를 담고 있는 서점이 한순간에 사라질 위기에 처하면서 지역에서는 서적을 보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22일 ‘소문난 서점’에 따르면 서점은 지난 1960년도 진주시 문산읍에서 처음 문을 열었다. 대표인 이무웅 씨가 총각 시절 시작했는데, 20여 년 전부터는 진주고속버스터미널 2층에 자리 잡고 쭉 운영되고 있다.

소문난 서점은 1980년대 후반까지는 호황을 누렸다. 날마다 수많은 손님이 오갔으며, 좋은 책이 많다는 입소문에 멀리 수도권에서도 손님이 찾아올 정도였다. 이 대표의 책에 대한 열정도 소문난 서점 호황에 한몫했다. 싸고 좋은 책이 있다는 말을 들으면 가격을 따지지 않고 매입했다. 헌책도 있지만 대부분 출판사 창고에 있던 재고 물량이라 책의 상태도 좋은 편이다.

그렇게 하나하나 모은 서적이 무려 30만 권이다. 서점은 물론 창고에까지 책이 가득 쌓였다. 서점은 더 이상 책을 둘 곳이 없어 책장과 책장 사이에 나무판을 대고 그 위로 책을 쌓았을 정도다. 빈틈 하나 없는 복잡한 미로지만, 서점을 찾은 손님들에겐 보물창고나 다름없다.

한 손님은 “15년째 단골이다. 여기에 없는 책이면 다른 헌책방에도 없다. 여기야말로 지역의 역사다. 수많은 책도 책이지만 헌책방에서만 느낄 수 있는 정겨움이 가득하다”고 말했다.

이무웅 씨 별세 후 아내인 유미순 씨가 서점을 이어받았다. 하지만 유 씨 역시 고령이라 서점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실정이다. 김현우 기자 이무웅 씨 별세 후 아내인 유미순 씨가 서점을 이어받았다. 하지만 유 씨 역시 고령이라 서점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실정이다. 김현우 기자

잘 나가던 소문난 서점에 위기가 찾아온 건 2000년대부터다. 곳곳에 도서관과 대형서점이 생기고 인터넷 판매가 활발해지면서 헌책방에 경영난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이 대표도 파킨슨병을 앓으며 건강이 악화됐다.

이 대표는 몸조차 가누기 힘든 상황에도 책 한 권 한 권을 직접 정리했고, 따로 수필과 시집도 내기도 했다. 마지막까지도 소문난 서점 운영에 온 힘을 다한 이 대표였지만 결국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2022년 파킨슨병이 악화돼 별세했다. 이 대표는 자신의 뇌를 의학 발전에 써달라며 부산대병원 뇌 은행에 기증하기도 했다.

이 대표 별세 이후 그의 아내인 유미순 씨가 서점을 이어받았지만, 경영 상황은 썩 나아지질 않았다. 유 씨 역시 76세 고령이다 보니 당장 30만 권에 달하는 책 관리부터 힘든 상황이다. 손님의 발길은 갈수록 뜸해졌고, 결국 폐업을 고민하는 수준에 이른 상태다.

유미순 씨는 “나도 고령이라 건강이 좋지 않다. 서점을 관리하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남편의 손때가 묻은 책들이고 서점이라 이대로 폐업하기엔 너무 아깝다. 적어도 책만이라도 누군가 인수했으면 하는데 경기가 워낙 어려워 이것도 쉽지 않다”며 답답해했다.

진주 소문난 서점으로 올라가는 길. 20여 년 전부터 진주고속버스터미널 2층에 자리 잡고 쭉 운영되고 있다. 김현우 기자 진주 소문난 서점으로 올라가는 길. 20여 년 전부터 진주고속버스터미널 2층에 자리 잡고 쭉 운영되고 있다. 김현우 기자

소문난 서점이 폐업할 수 있다는 소식에 지역에서는 아쉬움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60년 넘게 지역과 동고동락했던 서점이 문을 닫는 데다 수십만 권의 책이 한순간에 사라질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특히, 소문난 서점은 다른 헌책방과 다르게 고서적 초판본이 상당히 많은 편이다. 20~30년은 기본이고, 70~80년 된 서적도 곳곳에 쌓여 있다. 여기에 해외 서적은 물론, 일부 집안의 족보까지 보관 중이다.

경상국립대 이정희 고문헌도서관 학예연구사는 “대학이나 공립 도서관은 신간을 우선적으로 다룬다. 오래된 책들은 폐기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소문난 서점에는 1960년도 이후 간행된 책들이 많다. 지금은 구하기 힘든 소설·잡지 등 다양한 서적을 보유하고 있어서 차별화·특성화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지자체나 교육청이 나서야 한다는 말도 나온다. 헌책들을 매입해 공유 책방을 운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서울시의 경우 폐기된 창고와 헌책방의 책들을 사들여 공공헌책방인 ‘서울책보고’를 만들었다. 약 13만 권의 책을 전시·판매하고 있는데 안팎으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조현신 경남도의원은 “지역에서 60년간을 유지해 온 헌책방으로, 진주의 역사나 마찬가지다. 이런 헌책방을 그냥 사라지게 해서는 안 된다. 공유 책방의 기능을 살려서 시민들이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자리가 필요한 것 같다”고 강조했다.

마치 미로와 같은 서점 내부 모습. 구하기 힘든 소설·잡지 등 다양한 서적을 보유하고 있어 공유 책방으로 운영하자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김현우 기자 마치 미로와 같은 서점 내부 모습. 구하기 힘든 소설·잡지 등 다양한 서적을 보유하고 있어 공유 책방으로 운영하자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김현우 기자


김현우 기자 khw82@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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