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딩방 사기 갈수록 교묘해지는데 피해 구제는 ‘감감’

나웅기 기자 wongg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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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분기 피해액 1788억으로 급증
경찰에 신고해도 출금 못 막아
피해자 구제, 범죄 속도 못 따라가
현행법은 보이스피싱만 규제

부산 연제구에 사는 A 씨는 SNS 한 단체 대화방에 빠졌다가 큰 손해를 봤다. 손쉽게 수익을 올릴 투자 정보를 준다는 말을 믿은 게 화근이었다. 대화방 참가자들에게 추첨으로 경품을 지급하고, 투자 전문가가 수익률을 보여주는 모습에 A 씨는 이내 의심이 사라졌다고 한다.

A 씨는 자연스레 채팅방에 공유된 사설 HTS(홈 트레이딩 시스템) 앱을 받아 투자를 시작했다. 돈을 넣을수록 HTS 상에 수익이 억 단위로 늘었다. 그런데 A 씨가 수익금을 출금하겠다 하니 업체 측은 수수료 20%를 요구했다. 그제야 의심이 든 A 씨는 부산경찰청에 사건을 접수했다. A 씨는 SNS ‘리딩방’에 2억 7000만 원을 투자한 상태였다.

투자 정보 제공을 미끼로 불특정 다수를 불러 모아 허위 시스템에 수익이 난 것처럼 속이고 투자금을 가로채는 주식 리딩방 사기가 눈덩이처럼 늘어나고 있지만, 정작 피해자들은 신고를 하고도 투자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일이 이어지고 있다. 리딩방 사기 범죄에 이용된 계좌 지급을 정지할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온라인 투자 사기 수법이 다양해지고 있어 피해자 구제를 위한 빠른 대책이 시급하다.

23일 경찰청에 따르면 올해 2분기 투자 리딩방 사기 접수 건수는 2154건, 피해액은 1788억 원으로 집계됐다. 경찰이 투자 리딩방 사기 집계를 시작한 지난해 4분기 접수 건수는 1177건에 피해액은 890억 원, 올해 1분기 접수 건수는 1783건에 피해액은 1704억 원이다. 리딩방 사기가 최근 급증 추세다.

테마형 주식이나 재테크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관련 사기도 덩달아 늘어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사기꾼들은 증권사나 투자 전문가를 사칭해 단체 채팅방에 투자 정보를 제공하겠다며 개인 투자자들에게 접근한다. 이슈가 되는 종목을 골라 설명하고, 매수와 매도 타이밍을 알려주며 친근하게 개인 투자자에게 다가간다. 수익을 자랑하는 바람잡이까지 활동한다.

유혹에 빠진 피해자들은 사기 업체가 만든 사설 HTS에 가입해 투자에 나선다. 그러나 사기 업체는 피해자가 투자 후 수익금을 빼려고 하면 수수료나 추가 입금을 요구한 뒤 잠적하는 수법을 쓴다.

정작 문제는 리딩방 피해자가 구제받는 일이 불가능에 가깝다는 점이다. 리딩방 사기의 경우 계좌 동결 등 피해 구제 조치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보이스피싱이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 방지와 피해금 환급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은행이 범행 이용 계좌를 즉시 동결한 후 출금을 정지할 수 있는 것과도 다르다. 경찰이 수사에 착수할 때는 이미 피해 금액이 빠져나갈 때가 많다. 범죄 진행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범행 이용 계좌 입출금을 선제적으로 차단할 법적인 근거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동국대 곽대경 경찰사법대학 교수는 “리딩방 사기는 투자를 전제하기 때문에 보이스피싱보다 피해 금액이 기본적으로 훨씬 크다”며 “계좌에서 피해 금액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정지하거나 환수할 수 있는 법적인 근거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동의대 최종술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투자 사기범들에 대한 강력한 처벌과 함께 추가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금융 당국이나 정부 차원 교육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나웅기 기자 wongg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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