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노인과 바다'의 경쟁력

김승일 논설위원 dojun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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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베이비부머 세대 은퇴 후 거주 유형에 두 가지 흐름이 있다. 텍사스주처럼 날씨 좋고 생활비가 저렴한 곳에 형성된 시니어타운으로의 이주다. 조지타운시 ‘선시티 텍사스’(Sun City Texas)는 노년층이 몰려 인구·세수 증가로 대박을 친 사례다. 부동산 개발사가 조성해 성공한 경우다. 다른 흐름은 대학과 연계된 시니어 주택단지로의 입주다. ‘대학 기반 은퇴자 공동체’(UBRC, University Based Retirement Community)로 불린다. 대학이 평생 교육 프로그램으로 인문·교양 강의를 제공하거나 체육 시설을 개방한다. UBRC 입주자들에게는 황혼의 캠퍼스 라이프가 시작되는 것이다. UBRC는 지난 20년간 스탠포드·듀크대와 펜실베이니아·아이오와주립대 등 100곳으로 늘어났다.

일본은 실버타운도 많지만 ‘칼리지 링크형 주택단지’라는 이름으로 대학과 연계한 시설도 등장했다. 일본 간사이대학은 2007년 고베시에 ‘앙크라쥬 미카게’라는 대학 연계형 시니어 주택단지를 만들었다. 학령 인구 감소에 따른 대학의 생존책이기도 하다.

정부가 최근 ‘시니어 레지던스 활성화 방안’을 내놓았다. 인생 후반전의 주거 패러다임 변화를 유도하기 위해 규제가 대폭 완화됐다. 민간 실버타운이나 저소득층을 위한 공공임대주택 등 다양한 주거 형태가 활성화될 전망이다. 특히 분양형 실버타운은 고비용, 투기 우려로 2015년 금지됐다가 전국 89개 인구 감소 지역 한정으로 허용됐다. 부산은 동·서·영도구 등 원도심이 사업 가능 지역이다. 한국형 UBRC도 전국 최초로 부산에서 등장할 전망이다. 동명대는 정문 주변에 600여 세대 노인 주택을 짓기 위해 법무법인 대륙아주와 업무협약을 맺었다. 도심에 거주하면서 대학의 자원을 누리는 UBRC의 강점을 살리겠다는 전략이다.

한국은 올해 65세 이상 인구가 1000만 명을 넘었고 내년에 인구 비중 20%를 넘기면 초고령사회로 진입한다. 부산은 이미 23%를 넘어 특별·광역시 중 고령화 속도가 가장 빠르다. 그 결과 원도심은 독거노인과 빈집으로 넘쳐난다. 그래서 ‘노인과 바다’라는 자조가 나오지만 역발상으로 접근하면 자산이 될 수도 있다. 부산만큼 기후와 자연 경관, 물가 등에서 살기 좋은 조건을 고루 갖춘 곳이 드물다. 의료·교통 접근성도 뒤지지 않는다. 부산은 인생 3막의 도시로서 충분히 매력적이다. 실버 케어 산업으로 인구 유입과 고용 창출을 노린다면 부산만 한 경쟁력을 갖춘 도시가 있을까.

김승일 논설위원 dojune@


김승일 논설위원 dojun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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