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업 불황에 안전 위협하는 노후 굴뚝

김준현 기자 joo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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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균열 발생 등 부실화 징후
철거비 4000만~5000만 원 달해
비용 지원 위한 조례 제정 잇따라
“실태조사·관리 대책 마련 시급”

부산 남구 문현동의 한 목욕탕 굴뚝. 하부에 2~4mm 넓이의 균열이 발생했다. 부산 남구 문현동의 한 목욕탕 굴뚝. 하부에 2~4mm 넓이의 균열이 발생했다.

부산 남구에서 28년째 목욕탕을 운영하는 이 모(71) 씨는 최근 밤잠을 설친다. 무더위가 아닌 목욕탕 뒤편에 있는 굴뚝 때문이다. 이미 20년 넘게 사용하지 않는 굴뚝에 최근 균열이 발생하고 콘크리트 조각이 수십 미터 높이에서 추락했다. 이 씨는 목욕탕 인근 아파트 개발 업체가 실시한 발파 작업이 균열 원인이라 지목했다.

전문 업체는 굴뚝에 대해 안전 등급 C등급을 부여하면서 보수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이 씨는 가뜩이나 목욕탕을 찾는 이들이 줄었는데 수백만 원에 달하는 보수 비용을 충당하기는 어렵다며 답답함을 토했다. 굴뚝 철거에 대해서도 이 씨는 고개를 내저었다. 수천만 원이 필요한 탓에 철거는 그림의 떡이라는 것이다.

부산 도심에 우뚝 솟은 목욕탕 굴뚝이 오랜 시간 방치되면서 일부에서는 균열이 발생하는 등 부실화 징후를 보이고 있어 안전 우려를 낳고 있다. 하지만 목욕탕 업주들은 4000만~5000만 원에 달하는 비용 때문에 철거를 꺼리고 있다. 40년 넘은 굴뚝들도 수두룩하다는 점에서 지자체 등 공공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부산 15개 구·군(강서구 제외)에 따르면, 부산 지역 목욕탕 노후 굴뚝은 334개다. 모두 조성된 지 20년이 지난 낡은 굴뚝으로 40년이 지난 굴뚝도 다수다. 강서구의 경우 목욕탕 굴뚝이 모두 6개가 있는 것으로 조사됐지만, 정확한 조성 연도는 파악되지 않았다.

목욕탕 굴뚝은 과거 벙커C유 등 기름이 주 연료로 쓰이던 시절 발생하는 대기오염을 줄이기 위해 설치됐다. 당시 행정 당국은 높이 20m 이상 굴뚝 설치를 의무화했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부터 도시가스가 주 연료로 바뀌면서 굴뚝 쓰임새는 확연히 줄어들었다. 쓸모가 없는 굴뚝은 관리 사각지대에 방치됐고, 이에 따라 노후 속도도 빨라져 이제는 붕괴 위험이 내재된 애물단지로 전락한 신세다.

철거가 가장 확실한 안전사고 예방 대책이지만, 업주들은 비용 문제로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통상 굴뚝을 철거하기 위해서는 4000만~5000만 원이 들어간다. 목욕업계가 가뜩이나 불황을 겪는 와중에 쉽사리 감당하기는 어려운 금액이다.

이 씨는 “가뜩이나 목욕업이 불황인데 수천만 원을 철거 비용에 사용하라는 것은 무리다”며 “행정 당국이 철거 비용 일부라도 지원해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미 부산에서도 노후 굴뚝에 대해 철거 비용을 지원하는 지자체가 나왔다. 동·동래·서·중구 등 4곳이다. 최근에도 남·부산진구가 조례 개정 등을 통해 노후 굴뚝 철거 비용 지원 근거를 마련하며 동참하는 중이다. 하지만 상당수 부산 지자체는 노후 굴뚝 정비와 관련한 지원이나 제도를 마련하지 않고 있다.

노후 굴뚝 철거 비용 지원 조례를 발의한 부산 남구의회 소속 이종현 의원은 “사유재산 관리에 공공 예산을 투입하는 것에 대한 논란이 있을 순 있겠지만, 그렇다고 위험천만한 굴뚝을 방치할 수도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노후 굴뚝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체계적인 관리 대책을 마련하는 게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글·사진=김준현 기자 joon@busan.com


김준현 기자 joo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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