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진의 디지털 광장] '티메프 사태'와 댓글팀의 닮은 점

이호진 기자 jin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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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메프’ 정산·환불 불능 사태
“고객 돈으로 기업 인수?” 의혹
상장 대박 꿈 무리한 몸집 불리기
국민 피해에 이커머스 신뢰 추락
국힘 선거 과정 댓글팀 논란 재현
정치 신뢰 깎는 ‘여론판 허장성세’

가만히 서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염천, 서울 티몬 본사 앞에 온종일 장사진을 친 소비자들의 행렬이 TV 화면에 비쳤을 때 무척 낯설었습니다. 휴대폰 하나로 생활에 불가능이 없는 시대,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요.


티몬·위메프(‘티메프’) 사태의 파장이 만만치 않습니다. 국내 전자상거래(이커머스) 시장 4·5위 업체인 ‘티메프’가 판매자에게 대금 정산을 제때 하지 못한 데 이어 소비자 결제액에 대한 취소·환불까지 제대로 하지 못하는 상황에 빠진 것입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사태의 근원은 무리한 사업 확장이었습니다. 인터파크 사내 벤처에서 시작한 지마켓을 미국 나스닥에 상장시킨 뒤 2009년 이베이에 5500억 원에 매각해 대박을 터뜨린 구영배 대표. 그는 2010년 이베이와 합작회사 큐텐을 설립하고, 2019년 큐텐의 물류자회사 큐익스프레스 한국법인을 설립한 뒤부터 또 한 번 나스닥 상장 꿈을 키우며 본격적인 몸집 불리기에 나섭니다.

적자가 누적된 티몬, 위메프를 주식 교환 형태로 인수한 데 이어, 인터파크커머스, 미국 쇼핑몰 위시를 사들입니다. AK몰은 빚을 떠안는 조건으로 단돈 5억 원에 인수하기도 합니다. 이들 쇼핑몰의 물류 일감을 큐익스프레스에 몰아 성장시킨 뒤 나스닥에 상장하려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대박 꿈에는 잘못이 없지만 방법이 문제였습니다. 기업 인수 자금 확보를 위해 상품권 할인 판매와 정산 주기 연장 같은 방법이 동원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됩니다. 티몬은 통상 3%인 할인율의 배 이상인 7.5%로 상품권을 팔았고, 곧바로 사용할 수 있는 다른 상품권과 달리 한 달 뒤에야 쓸 수 있게 했습니다. 또 정산 주기는 업계에서 대체로 2~3일 내, 가장 긴 쿠팡도 40~50일인데, ‘티메프’는 2개월 이상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구매 취소나 환불에 대비해 일정 정산 기간을 둘 수 있지만, 두 달 이상 고객 돈을 플랫폼 업체가 내 돈처럼 활용하는 데 대해 규제는 없었습니다.

위메프에서 시작된 정산 지연이 티몬까지 퍼져 유동성 위기가 우려되자 온라인 결제 대행업체들은 지난 24일부터 거래를 중단했습니다. 이제는 소비자들의 결제, 환불까지 불가능해진 것입니다. 지난주 소비자들이 티몬 본사 앞으로 몰려갔던 이유입니다.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의 대금 정산 피해를 구제하려고 정부가 5600억 원을 긴급 수혈한다고 밝혔지만, 일각에선 피해액이 1조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기도 합니다. 국내 이커머스 시장의 앞날에 얼마나 악영향을 미칠지 걱정입니다.

앞서 정치권에서는 ‘댓글팀’ 논란이 벌어졌지요.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가 올 1월 당시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에게 명품 가방 수수 논란에 대한 사과 문자를 여러 차례 보냈는데, 그 중 “제가 댓글팀을 활용하여 위원장님과 주변에 대한 비방을 시킨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라는 부분이 발단이었습니다. 당대표 선거에 한 전 위원장이 출마하면서 6개월 전 김 여사 문자가 소환된 건데요. 문자를 읽고 답하지 않았다는 ‘읽씹’ 논란과 함께 댓글팀 이슈가 여야를 달군 것입니다.

우선 여권 내에서 장예찬 전 최고위원이 한 후보의 법무부 장관 시절 여론 조성팀이 운영됐고, 자신도 그 팀에 동참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양문석 의원은 한동훈 법무부 장관 취임 직후 활동하기 시작한 여론 조작 의심 계정과 댓글을 발견했다고 주장합니다. 조국혁신당 조국 의원은 댓글팀 의혹을 ‘한동훈 특검법’ 수사 대상에 추가하겠다고 밝힙니다. 논란에도 당대표에 무난히 당선된 한 후보는 “(댓글팀 논란은) 시민의 자발적 의사 표현을 모욕하는 명예 훼손 행위이며, 자신은 어떠한 형태의 여론 조성 작업에도 관여한 바 없다”고 반박합니다.

민주주의를 움직이는 힘은 여론입니다. 엄밀한 시스템과 관리 아래 시행하는 여론조사도 있지만, 시중 여론의 가늠자로 포털 댓글을 살피는 경우가 많다 보니 우리 정치에서는 잊힐 만하면 댓글팀 논란이 반복됩니다. 하지만 대다수 시민도 이제는 댓글에 크게 영향받지 않습니다. 여러 댓글팀 사례를 경험한 데다, 정보 출처가 유튜브 등으로 확장됐기 때문입니다.

경제도 정치도 신뢰에 기반하지 않고는 바로 설 수 없습니다. 무리한 사업 확장, 더 많은 지지층을 확보한 것처럼 부풀리고자 하는 욕심에 우리 사회의 근간인 신뢰가 무너집니다. 2500년 전 춘추시대나 디지털 세상이나, 신뢰가 생명입니다.


이호진 기자 jin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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