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우렁이의 배신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한국 사람들, 골뱅이를 좋아한다. 외국 사람들은 의아해하는데, 졸깃한 식감에 달달한 그 맛을 미처 몰라서 그렇다. 문제는 공급이 수요를 못 따라간다는 점. 당연히 비싸다. 대안으로 생각된 게 골뱅이 비슷하게 생긴 우렁이다. 정확히는 외래종인 왕우렁이다. 토종 우렁이가 없지는 않지만 생산량이 많지 않다. 중남미,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등 열대 지방에 널린 게 왕우렁이다. 골뱅이에 비해 맛은 좀 떨어져도 워낙에 잘 자라고 번식력이 좋아서 훨씬 싼 값에 들여올 수 있었다.

1980년대 초 왕우렁이가 식용으로 처음 국내에 들어왔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이놈들이 잡초의 새싹을 엄청나게 먹어치우는 게 아닌가. 거기에 착안해 나온 게 벼농사에 왕우렁이를 이용하는 농법이다. 농가에서 마다할 까닭이 없었다. 제초제 쓰는 것보다 훨씬 저렴하고, 농약 피해도 없고, 일손도 덜어주고, 효과까지 좋았던 것이다. 정부는 친환경 농업을 모토로 왕우렁이 농법을 적극 장려했고, 지자체들도 예산을 들여 농가에 왕우렁이를 보급했다. 2010년대 들어 왕우렁이 농법은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

그런데 아뿔싸! 이 왕우렁이로 인해 지금 전남 지역에 난리가 났다. 잡초만 뜯어먹어야 할 놈들이 어린 모까지 깡그리 먹어치우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아예 벼농사를 포기한 농가도 속출하는 형편이다. 강진, 해남 등 전남 9개 시·군에 피해 면적이 전체 논의 30%에 이른다니 보통 일이 아니다. 다급해진 지자체들이 살충제를 동원하는 등 안간힘을 쓰지만 효과를 보지 못한다는 소식이다. 왕우렁이 보급에 혈세를 쏟아붓다가 이젠 퇴치에 또 혈세를 쏟아붓고 있으니, 이 무슨 촌극인가 싶다. 향후 피해가 경남 등 다른 지역에까지 확산될 가능성이 커 당국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이렇게 된 데에는 지구온난화가 1차 원인으로 지목된다. 열대가 원산지인 왕우렁이들이 겨울에 다 얼어 죽어야 하는데, 이상고온으로 살아남아 개체 수가 감당할 수 없는 지경으로 불어난 것이다. 하지만 이 역시 인재(人災)라는 지적도 많다. 왕우렁이로 인한 벼농사 피해는 오래전에 예고된 바다. 30여 년 전 같은 피해를 입은 일본의 상당수 지자체가 왕우렁이 농법을 금지한 게 한 예다. 이런 경고를 무시하고 눈앞의 이득만 좇은 후과를 지금 아프게 치르고 있는 것이다. 한 치 앞도 못 보는 인간의 식견, 가소롭다고 하겠다. 임광명 논설위원 kmyim@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